엑스(X, 구 트위터)에서 이미지 캡처


북한에는 수많은 돌격대들이 있다.

그런데 토지정리돌격대는 처음으로 들어나는 돌격대의 한 표본이다.

“3만 3천500여 정보의 토지 정리, 수천 정보의 간석지 내부망 공사.”

지난 23일 조선중앙통신(이하 신문)이 보도한 ‘토지정리돌격대’의 성과는 수치로는 장대하고 마치 북한 내부에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커다란 보물을 찾은 듯 웅장하게 표현된다.

신문은 토지정리돌격대 덕분에 지난 5년간 전국적으로 기계화포전과 규격포전이 조성되었고, 논농사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과의 배경이 되는 구체적인 지역명은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황해도도, 평안도도, 어느 군도 읍도 없다.

오직 ‘전국적으로’라는 추상적 수식어와 ‘승리자의 대회’라는 정치적 구호만이 반복된다.

◆ 정치화된 풍경 재편성

이것은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풍경을 정치화하는 북한 전체주의 정치의 한 부분이다.

북한에서 ‘돌격대’는 단지 노동 집단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지를 구현하는 상징적 주체이며, 자연을 개조하고 역사를 재구성하는 도구이며 강제노동의 일환으로 현대판 노예의 현장이다.

‘토지정리돌격대’는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영역인 토지, 즉 삶의 기반을 다루는 집단이다.

‘토지정리돌격대’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돌격대 이름은 아니다.

만들어진 지 5년 밖에 안 되는 조직이라고 한다.

토지정리돌격대, 이들이 정리한 땅은 단지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조치가 아니라, 국가가 기획한 풍경의 재편성이다. 또한 그들은 주민들의 삶을 약탈해 가는 정치적 조직의 약탈자들이다.

북한의 정치적 구호는 다 알겠지만 이번에 반복되는 용어들인 ‘기계화포전’, ‘규격포전’은 단순한 기술 용어가 아니다. 이들은 수학적 언어로 포장된 정치적 명령이다.

포전(圃田)을 ‘규격화’하고 ‘기계화’한다는 말은, 자연을 직선화하고, 인간의 노동을 계량화하며, 삶의 다양성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이 언어는 마치 공학적 효율성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통제 가능한 땅, 통제 가능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기획이며 전체주의에서만 나올 수 있는 명령어이다.

◆ 약탈과 감시의 이면

더욱이 ‘정리’의 이면에는 주민들의 소토지 강제 회수와 생계 기반의 박탈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농업 정책은 오랜 시간 동안 개인의 자율적 경작지를 ‘비사회주의 행위’로 규정하며 통제해왔다.

주민들이 스스로 일군 텃밭이나 간척지는, 일정 시점 이후 국가 소유로 전환되며 보상 없이 회수되기도 한다.

북한은 해방 후 토지를 무료로 나눠주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모두 회수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전체주의 시스템이다.

이 부분에서 여전히 한국은 오류를 범한다. 역사학자들은 북한은 토지를 무료로 나눠주고 한국은 유상으로 나눠줬다며 그 당시 이승만 정부를 욕하고 김일성 정책을 지지하는 자료들도 나온다.

한국 국민들이 다시 한 번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금의 북한 농업 정책을 다시금 보기를 바란다.

전쟁 후 이뤄졌던 무상몰수는 70여 년 동안 전체주의 농업 분배로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주민들이 일군 소토지조차도 ‘토지정리’라는 이름 아래, 삶의 마지막 버팀목마저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이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약탈이다.

북한의 농업은 여전히 ‘주체농법’이라는 이념적 틀 안에서 운영된다.

주체농법은 김일성의 교시를 절대 기준으로 삼아,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충성심과 자력갱생을 우선시하는 농업 방식이다.

기후 변화나 토양 조건보다 ‘수령의 사상’을 우선하는 이 방식은, 실패해도 수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는 농민의 충성심 부족이나 ‘비사회주의적 태도’ 탓으로 전가된다.이러한 체계 속에서 농민들은 ‘3대혁명 소조’의 감시 아래 놓인다.

3대혁명 소조는 사상·기술·문화의 3대 영역에서 주민을 ‘혁명화’하기 위한 조직으로, 농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상 검열을 수행한다.

누가 소토지를 몰래 경작하는지, 누가 시장에 몰래 나가는지, 누가 말끝을 흐리는지를 기록하고 보고한다. 감시와 처벌은 일상이고, 자율은 사치다.

이런 맥락에서 ‘토지정리돌격대’는 단순한 건설 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정치적 동원 체계의 일환이며, 비사회주의를 색출하고 통제하는 국가 기획의 일선 부대일 수 있다.

그들이 정리하는 것은 땅만이 아니라, 주민의 자율성과 생존의 흔적이다.

그들이 밀어내는 것은 논두렁만이 아니라, 비공식적 생계와 공동체의 기억이다.

‘정리된 땅’은 곧 국가가 통제 가능한 땅이다.

그리고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식·의·주는 여전히 국가의 허락 아래에 놓인다.

자율적 경작은 금지되고, 시장 활동은 단속되며, 생계는 배급과 충성도에 따라 배분된다.
국가는 여전히 주민의 배고픔마저 통제하려 한다.
지도에서 지워진 땅은, 곧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들을 뜻한다.

그곳에 살던 농민들, 그 땅을 일구던 손들, 그 논두렁을 따라 걸었던 발자국들.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의 이름은 왜 언급되지 않는가.

국가가 정리한 것은 토지뿐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삶을 모두 지운 것일까?

박지현

· 아시아 태평양 전략센터 인간안보 연구원

· 스페인 마드리드 프란치스코 빅토리아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원

·《The Hard Road Out: One Woman’s Escape from North Korea》 저자 (유럽에서 8개 국어로 출간. 한국어판은『가려진 세계를 넘어』 (2021 슬로비),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 2026 영국 지방의회 후보자(보수당 후보 확정, Moorside Ward)

· 징검다리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