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블로그에서 ‘당신들은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다. 그러니 남을 도울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쓴 글을 봤습니다.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또 그 전후 자신을 되돌아볼 때 가장 구체적인 변화가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박 :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입니다(Not a Victim, But a Survivor).’ - 이 말은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처음 받아들인 것은 2021년 영국 지방 선거에 참여하면서였습니다. 그때까지 제 삶은 ‘북한 정권의 피해자’라는 시선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았고, 저 스스로도 내면 어딘가에는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국 사회는 달랐습니다. 영국인들은 저를 그저 ‘가엾은 난민’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혹한 체제 속에서도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당신은 생존자(Survivor)이며, 살아남은 자로서 말할 힘이 있다.”는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말은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았고, 저의 어떤 정체성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일부 기자들은 제게 이렇게 묻기도 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북한 정권을 용서한 겁니까?”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직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피해자들을 더 정확하게 보려고 한 발 더 나아간 겁니다.”
이 주제를 말하면서 저는 두 권의 책을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Marry Me Tomorrow>와 <Finding Me>라는 영어 소설입니다.
두 작품 모두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던 이들이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다’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고, 마침내 사회의 일원으로 회복되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여러 번 반복해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그 말이 마치 제 내면에도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피해자’라는 타이틀만 붙잡고 살아간다면, 그 정체성에 갇혀 영원히 사회의 중심에는 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 틈을 악은 놓치지 않습니다. 다시 유혹하고, 다시 억압하며, 다시 그 고통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자’라는 정체성은 다릅니다. 그건 단순히 과거에서 벗어났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세상에 대한 권리를 다시 선언하는 말입니다.
“나는 이 사회의 일원이다. 나는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다. 나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졌다.” - 이 말이 바로 ‘생존자’라는 정체성의 힘입니다.
피해자란 타이틀만 붙잡고 살면 영원히 사회 중심에 서지 못해
악(惡)은 그 틈을 다시 파고들어 고통에 갇히게 한다.
하지만 '생존자'란 정체성을 갖는 순간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 말을 반복합니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생존자다.’ 이 말이 저를 일으켜 세웠고, 오늘도 또 다른 생존자들을 향해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박지현 씨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는 영국 문화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증언했다. / @ 프리덤조선
Q. 역시 블로그에 올리신 글 중에서, 문화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 문단 사정을 잘 아는 어떤 작가는 한국 주류 문단이 백낙청 사단 아래 심각하게 좌편향이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작가는 현대 한국 주류 문단은 스스로 진보요, 문학이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평양이나 베이징 취향에 맞는 문화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더군요. 문단 사정은 정확히 모르지만, 현역 작가가 그런 지적을 하는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언급하신 문화전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영국 문학의 위력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데다,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니까요. 의회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 천부인권 및 저항권 개념과 정부의 역할 제한 등에 대한 존 로크의 통찰력은 지금 다시 봐도 감탄스럽습니다. 로크가 없었다면 근대 민주주의도, 서구도, 미합중국의 탄생조차 불가능했을 거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박지현 씨처럼 북한과 중국 같은 공산 전체주의 국가 경험을 거쳐 정반대의 영국에 정착해 사는 극적인 경험은 매우 드뭅니다. 영국적 고유함 속에서 영감을 얻으며 문화전쟁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유, 또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실천 방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박 : 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이라고 믿습니다. 그 선택이 진실에 기반하느냐, 거짓 선동에 휘둘리느냐가 개인의 자유, 나아가 국가의 존엄성을 결정짓습니다. 그리고 문화전쟁이란 바로 이 선택의 전쟁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저는 스토아 철학(Stoicism)을 배우고 필사하고 있습니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의 글을 매일 읽고 적으며 내면의 힘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내가 지켜야 할 중심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스토아 철학을 통해 제가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분노하지 말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매일 실천하라.”
북한 정권은 우리 생각마저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토아 철학을 통해 배웠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철학은 제가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나아가 ‘자유 시민’으로 거듭나는 지렛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박지현 씨가 매일 읽고 묵상하며 직접 필사한다는 스토아 철학 노트들 일부. 영어와 한국어로 빽빽하게 쓰인 노트와 꼼꼼한 메모가 얼마나 치열하게 묵상하며 노력하는지 박 씨의 삶을 잘 보여준다. @프리덤조선
또 저는 영국에서 북한과 한국의 역사를 영어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 받은 교육은 선전과 왜곡 그 자체였고, 한국 역사 문제는 좌편향 된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을 보며 “진짜 역사를 영어로 배우고 세계에 알리는 일”이야말로 제가 해야 할 문화전쟁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특히 탈북민과 남한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글쓰기 방을 운영하며 ‘하나의 목소리로 진실을 전하는 것’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 씨는 '진실의 기록 공동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문화 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Illustration: Dom McKenzie/The Observer @프리덤조선
영국은 자유 민주주의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존 로크의 천부인권 사상, 저항권, 입헌군주제, 권리장전과 권리청원 등 민주주의를 열게 된 핵심적 가치와 역사적 전통 대부분이 영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탁월한 문학 전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의 위선을 날카롭게 갈파하고,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한 조지 오웰이라던가, 위대한 정치가이자 문필가였던 윈스턴 처칠은 제가 말하는 문화전쟁의 무기들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동시에 문학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다. 사진은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영국의 대표적인 문호 중 하나인 찰스 디킨스 / @프리덤 조선
저는 이곳에 살며 깨달았습니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용기와 기록 – 즉 말과 글이 지켜온 결과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제는 그 책임이 저와 같은 생존자이자 자유를 획득한 시민에게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남한의 지식인 문화는 논리나 철학이 아닌, 선동과 감정에 근거한 ‘운동권 감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정권에 대해 침묵하거나 심지어 동조하면서도 ‘반일’, ‘반미’, ‘평화’ 등의 구호만 반복하며 자신들이 정의로운 양 행동합니다.
그런 모습들은 북한 체제 선전에 이용당한 저의 과거와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결국 남한은 표현의 자유가 있음에도 스스로 자유의 철학이 없이 말하는 자유에만 집착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스토아 철학과 영국적 자유정신, 그리고 생존자로서의 저희 경험을 통해 ‘말할 자격’을 부여받았고, 진실을 고백할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문화전쟁은 이념의 전투가 아니라, 진실과 용기의 싸움입니다. 저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이며, 생존자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스토아 철학의 실천, 글쓰기 활동, 공동체 대화를 통해 이 시대의 왜곡된 역사와 감정적 선동을 이겨내는 작은 선(善)이 되고자 합니다.
세상이 혼란할수록, 우리는 더 조용하고 단단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문화전쟁이며, 그 싸움은 오늘도 여기, 제가 쓰는 글 한 줄에서 시작됩니다.
Q. 잘 알겠습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에서도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연대할 길이 있다면, 어떤 방식의 연대가 상호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혹시 탈북자를 포함한 한국인 문화 디아스포라 같은 방식에 대해 구상하시는 바가 있는지요?
박 : 중장기적 문화전쟁을 위해서는 우선 ‘같은 가치를 가진 이들의 실질적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그 연대가 단순한 동정심이나 피해자 돕기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진실의 기록자’로서, 또 문화의 전사로서 함께 싸우는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탈북자든, 한국인이든, 해외에 사는 한국인 출신 재외 동포든 결국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같고, 지켜야 할 가치는 동일하다고 봅니다. 북한 독재 체제, 중국식 감시 통제 권위주의, 남한의 문화 좌경화, 서구의 탈진실 사회화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용기’와 ‘철학이 담긴 기록’이 없이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연대를 단순한 ‘모임’이 아닌, ‘진실의 기록 공동체’로 만들고자 합니다.
탈북민은 체험의 진실을 말하고, 한국인은 내부자적 통찰을 추가하며, 재외 동포는 글로벌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삼각 구도의 ‘서사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의미 있는 하나의 전선이 될 수 있습니다.
탈북자, 한국인, 재외 동포가 함께 '진실의 기록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스토아 철학과 결부한 통합적 성찰 속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생존자의 언어'를 정립하는 게 꿈
제가 구상하고 일부 실천 중인 몇 가지 구체적 모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글쓰기 네트워크 확대 : 현재 운영 중인 탈북자 + 남한 청년들의 글쓰기 방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대하고, 영어 콘텐츠까지 확장한다. 단순한 북한 이야기가 아니라, 북한에 침묵하는 세계, 한국 지식인의 외면, 서구 언론의 이중성까지 다룰 수 있는 문화 지식 연대가 필요하다.
(2) 스토아 철학 + 동양 경험 통합 강연 및 세미나 : 저와 마찬가지로 스토아 철학을 삶에 적용해 본 탈북자, 한국인, 그리고 서구 철학자들과 정기적인 온라인 철학 세미나를 통해 동양의 전체주의와 서구의 자유주의를 통합적으로 성찰하는 경험을 갖는다.
(3) 글로벌 북토크 및 다큐멘터리 공동 작업 :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이를 영어로 재편집하여 세계 각지 보수, 자유주의 독립 매체에 전달하는 공동 작업. 책 출판, 다큐 제작, 전시회, 디지털 플랫폼 공개 등을 통해 세계 시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생존자의 언어(Survivor’s Language)’를 정립한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피해자’만 이야기합니다. 피해자는 감정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묶어두지 않고, 진실을 증언하는 생존자로, 자유와 민주주의, 천부 인권을 지켜내는 참다운 자유 시민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탈북자, 한국인, 재외 동포 디아스포라 모두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동일한 자격으로 만나야 합니다. 불쌍한 자와 돕는 자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인 제가 볼 때 한국 사회는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고, 북한은 그 외부에서 새로운 침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서구는 혼란에 빠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중국은 이 모두의 세계에 조용하지만 매우 깊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안에서 침묵하지 않는 이들과 대한민국 밖에서 깨어있는 이들이 연결된다면, 우리는 물리적 국경을 넘어 진정한 문화 전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중장기적 문화전쟁의 출발이자, 본질입니다. 더디더라도 끈질기게, 사소해 보여도 단단하게, 그렇게 코바늘로 ‘진실의 망’을 짜듯, 우리 역사를 엮어가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자녀들 및 가족에 대한 자랑 혹은 희망 사항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기타 하고 싶은 말씀 무엇이든 해주십시오.
박 : 저희 부부가 아이들 학교를 가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느냐’는 질문입니다. 런던에서도 동양 특히 한국계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유독 적극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고정관념입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사랑과 책임 안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라고 격려합니다.
우리는 부모지만, 아이들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는 조언하되, 선택은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또 하나, 저희는 아이들에게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 진실은 언젠가 아이들 스스로 묻게 되고, 부모에 대해 더 깊게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과 자긍심으로 바라보게 되었음을 느낍니다.
특히 자랑스러운 건, 아이들이 영어 이름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한글 이름이 좋다고 말했고, 영국이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도 스스로의 뿌리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 모습을 통해 오히려 배웁니다. 이민자, 탈북자, 소수자로서가 아니라, 정체성을 지키며 당당히 살아가는 세계 속의 자유 시민으로서의 가능성을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Q.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