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86세대가 과거 민주화를 외쳤다면, 오늘날 진짜 억압이 판치는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짜 자유는 나와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2023년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찰스 국왕을 직접 만난 박지현 씨. 박씨는 "영국에서 숱한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났지만 북한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찰스 국왕이 북한 인권에 매우 깊은 관심과 지식을 갖고 계셔서 크게 놀랐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시며 자유민주주의로 한반도 통일을 바라는 것을 느끼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 사진 /박지현 FB
Q. 소셜 미디어(페이스북)에 찰스 국왕과 만난 것이 무척 뜻깊었다고 올려놓은 것을 봤습니다. 다른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지만, 버킹엄 궁 초대 계기 및 절차, 영국 국왕이 북한 인권에 대해 갖는 관심 등에 대해 직접 느낀 바를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박 : 제가 처음 영국 국왕 찰스 3세를 뵌 것은 2023년 2월 1일이었습니다. 2022년 크리스마스 전에 영국 외교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동아시아인을 주제로 한 버킹엄 궁전 만찬에 저를 초대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스팸메일인 줄 알았지만, 이후 직접 전화가 와서 초대 경위를 설명해 주었을 때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2021년 크리스마스에도 영국 더 티임즈가 ‘영웅 29인 리스트’를 발표하며 저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혹시 여왕을 만나느냐는 질문도 했지만, 그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3세 국왕이 즉위 후 마련한 행사에 제가 초대받아 버킹엄 궁전 초대장도 받게 된 것입니다.
국왕께서는 저에게 "어떻게 북한을 탈출했느냐?"고 물으셨고, 북한 주민들이 세뇌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영국에 온 후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났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왕님의 깊은 관심과 진심 어린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손을 꼭 잡아 주시는 순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6개월 뒤, 찰스 국왕이 즉위 후 첫 국빈 방문 국가로 대한민국을 선정했다고 트윗으로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국빈 만찬 초대는 있었지만 특별한 관심은 없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 때는 재외동포 간담회 참석 여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중국에서 탈북민 600여 명 강제 북송 소식이 전해지며 기자들의 연락이 이어지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 번호 제한이라 받지 않으려 했지만, '버킹엄 궁전' 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버킹엄 측에서는 외교부가 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하며, 대한민국 대통령 국빈 만찬에 저와 남편을 초대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집 주소와 남편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이후 정식 초대장과 드레스 코드 안내 메일을 받고, 2월에 뵈었던 찰스 국왕님을 11월에도 다시 뵐 수 있었습니다. 국왕님은 저를 알아보시고 "또 왔느냐, 잘 왔다."며 다정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님도 그런 모습을 보고 아마 궁금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윤 대통령님께 남편과 함께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임을 알려 드렸고, 유일하게 대한민국 국빈 만찬에 참석한 탈북민 부부라는 점에 의미를 느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이 바라는 한반도 통일은 바로 '자유 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Q. 최근 한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국내외 보수 진영은 친북 정권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언젠가 화해하고 통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및 현재 북한 정권이 자행한 온갖 반인륜범죄는 도저히 덮고 넘어갈 차원이 아닙니다. 그 체제의 직접적 피해자와 2세, 3세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통일 한국이 도덕적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도, 재중 탈북자 인권을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탈북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중에서도 특히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및 강제 북송된 경우의 참혹한 인권 유린 참상은 너무나 많은 증언이 쌓여서, 이미 수년 전 유엔에서도 정식 보고서로 채택되어 인정되었습니다.
그런 인권 유린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향후 북한 정권을 상대해야 할 신임 이재명 정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탄없이 해주십시오.
박 : 저는 탈북자이며, 다른 많은 북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직접 겪은 생존자입니다. 영국 땅을 밟기까지 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재명 정부는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저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사실상 지워버리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2017년, 국제인권단체인 코리아 퓨처 이니셔티브(Korea Future Initiative)와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중국 내 북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되고 있으며, 결혼, 성노예, 온라인 성산업 등으로 팔려가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미 10년 넘게 이 범죄는 지속되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입니다.
참고 - 2017년 휴먼 라이트 와치의 북한 인권 보고서 바로 가기
https://www.hrw.org/world-report/2017/country-chapters/north-korea
그리고 최근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 내에서 온라인 성매매 영상에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감시를 받으며 카메라 앞에 서고, 성 착취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 채팅방에 들어와서 돈을 내고 그 여성들의 성을 소비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한국 남성들이라는 사실을 저는 직접 들었습니다.
남한 땅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외친다는 사람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인신매매된 동포 여성들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인신매매 고통에 시달리는 재중 탈북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강하게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팔리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침묵합니까?
왜 재중 탈북 여성들의 문제, 강제 북송,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고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박지현 (맨체스터, UK)
이재명 정부는 이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위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왜 재중 탈북 여성 문제, 강제 북송,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 처형, 고문 같은 끔찍한 참상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겁니까?
왜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강하게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팔려가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이재명 정부에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의가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화해는 가짜입니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통일은 폭력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진심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북한 체제의 범죄를 인정하고 그 피해자들을 보듬는 태도부터 보여야 합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북한 정권에만 고개를 숙인다면, 대한민국은 그 어떤 도덕적 정통성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10월 KBS 스페셜에서 방영되며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23세의 북한 꽃제비 여성. 당시 북한 내부에서 취재 활동을 벌이던 일본 아시아 프레스가 6월 평안남도에서 이 여성과 인터뷰를 해서 영상을 제공했다. 이 여성은 안타깝게도 얼마 후 옥수수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5년이 흐른 2025년 현재도 평양 특권층을 제외한 지방 북한 주민 다수가 생활고에 시달린다. 자유와 기본 인권은 당연히 누리지 못한다. 김정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략 전쟁에 당사자 및 가족에게도 제대로 통보하지 않고 북한 군인들을 멋대로 용병으로 동원해 유럽 전쟁 총알받이로 보냈다. 초기에는 용병 동원 자체를 부인하다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자, 최근 김정은이 직접 전사자 100명 신원을 공개하며 애도하는 모습을 연출해 동요하는 북한 민심을 누그러뜨리려 기만하고 있다. / 사진 : KBS 화면 캡처
Q. 지현 씨가 블로그에 올리신 글 중 문화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 그리고 문화계 - 문학, 영화, 음악 등 전분야 - 에 종사하거나, 하고자 하는 프리덤 조선 독자들이 꼭 새겨야 할 점이 있다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박 :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문화 전쟁이란 다소 생소한 용어 같습니다. 북한에 대해 알아갈 때도, 북한은 굶주리는 나라, 김씨 3대 세습, 세뇌 교육은 알지만 그 세뇌 교육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 보니, 북한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많은 분이 '문화 전쟁' 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거창하거나 낯선 개념처럼 느끼지만, 북한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전쟁을 계획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특히 김정일이 후계자로 나선 1970년대부터, 그는 "총보다 강한 것이 문화"라고 봏고 문화를 체제 유지의 중심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세뇌는 절대 고문실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동요에서 시작하고, 시와 가극, 영화, 교과서, 포스터, 심지어 말투와 억양까지도 통제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어릴 때부터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을 시처럼 외우고 자라고, '혁명적 인간형'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5대 혁명가극 속 주인공들을 통해 배웁니다.
이것이 북한 주민들이 김씨 일가를 신처럼 받아들이고 섬기게 되는 진짜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문화전쟁의 결과입니다.
김정일이 만든 문화전쟁 체제는 지금 김여정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북한의 선전 문화 부문을 직접 장악하여 최근에는 평양 문화어를 기준으로 주민의 언어까지 통제하고, 남한식 말투를 쓰거나 외국말을 흉내 내는 청년들을 사상 반동이라며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 통제를 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입니다.
이 법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입을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까지 규제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문화전쟁은 철저히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기 위한 전쟁입니다.
북한 정권이 문화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처럼 자유 사회에서도 문화는 사람들 인식을 조종할 수 있어, 북한은 1970년대 김정일이 직접 '총보다 강한 것이 문화"라며 문화 분야를 챙기기 시작, 현재 김여정이 이어서 철저히 주민 사상과 감정을 통제, 세뇌, 처벌 중.
그런데 한국 사회도 지금 조용한 문화전쟁 안에 있습니다.
한국은 다양성이나 자유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이나 인권 중심 서사는 교묘하게 배제되고, 대신 북한 체제를 "그 나름의 체제"로 미화하거나 "분단의 피해자"처럼만 그리는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계가 점점 이념적으로 한쪽에만 기울고 있는 점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프리덤 조선 독자들 중에서 문학, 영화, 음악, 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문화는 단순히 감성의 표현이 아니라, 세계관을 전달하는 무기입니다. 진실을 감추는 문화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결국 진실을 믿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에, 거짓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됩니다.
북한 정권이 문화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처럼, 자유 사회에서도 문화는 사람들의 인식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 속에서 먼저 싸워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예술, 억압을 고발하는 문학, 자유를 노래하는 음악이 없다면 아무리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도 사상과 감정은 이미 독재에 잠식당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늘 전쟁이며, 우리는 지금 그 전선 위에 서 있습니다.
Q. 박지현 씨는 1968년 생이므로, 한국으로 치면 86세대 끝물입니다. 남한 86 세대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하며 30대 초반부터 국가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86세대의 민주화 기여를 인정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그 세대는 이념적으로는 가장 종북 좌파적 성향이 강합니다.
또 86 세대는 남한의 군사 정권이 독재였다고 아직도 증오하며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선군 정치와 억압 체제가 일상인 북한 독재 체제에게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소위 '내재적 접근론'으로 북한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체제를 이해하고 합리화하며, 북한 실상에 대한 비판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저도 그 세대 출신 현역 정치인에게서 직접 '남한은 일제에서 해방된 후로도 미군정을 거치며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노예가 되었지만, 북한은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김일성이 집권했으므로 민족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적 조국 역시 북한이므로, 북한에 충성해야 한다.'라는 말을 직접 듣고 충격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직접 살아보고, 탈북해 중국을 거친 끝에 근대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이라 할 영국에 정착해 정치권에도 도전해 본 입장에서, 지현 씨가 그러한 남한의 같은 세대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박 :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살았고, 목숨을 걸고 탈출했으며, (다른 많은 북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신매매 피해를 겪었습니다. 지금은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된 나라, 영국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며 인권 활동과 정치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 한국의 86세대 제 또래 정치인들, 학자들,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과거 한국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도 독재를 비판하며 자유와 권리를 외칩니다. 하지만 왜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입니까?
북한은 제가 직접 경험한 곳입니다.
자유로운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 신앙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도 전혀 없고,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하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가정 내에서도 감시를 당하고, 해외 뉴스를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처형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남한 86세대 일각에서는 "북한은 북한만의 문화가 있으니, 서구식 인권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소위 '내재적 접근론'을 내세워 현실을 외면합니다. '유교식 효(孝) 문화', '사회주의 공동체 정신' 운운하며 북한 정권에 면죄부를 줍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억압은 억압이고, 고문은 고문이며, 굶주림은 굶주림입니다.
'문화' 라는 이름으로 인권 침해를 포장하지 마십시오.
'내재적 접근'이란 북한 정권의 범죄를 정치적으로 외면하겠다는 선언일 뿐입니다.
그것은 억압받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교만한 태도이며, 과거 당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권위주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위선입니다.
당신들은 한국 군사 정권 시절을 독재 정권이라 비난하지만, 그 시절에도 남한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고, 이사도 할 수 있었으며, 외국 방송을 들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또 외국으로 이민도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이 죄입니다.
그 차이를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중립도 아니고, 동조입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 정권이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공식 규정했습니다.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종교 박해, 강제 낙태, 성폭력, 인신매매가 아예 국가 시스템이 된 나라가 북한입니다.
현재 제가 사는 영국은 2015년 현대판 노예제법(Modern Slavery Act)를 도입해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을 불법화했습니다. 이 법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겪어야 하는 성노예와 인신매매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매우 진보적인 법률입니다. 저는 이 법을 접하면서 확신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억압자를 단죄한다."
그런데 왜 남한 일부 정치권은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자에게만 관대한 겁니까?
86세대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들이 북한 주민들이 단지 외국 방송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소에 끌려가고,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 당하고, 굶주림을 피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는 여성들이 북송되어 처형 당하는 참혹한 동포의 현실에 침묵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이념적 동지의식입니까?
북한 정권에 대한 정치적 계산입니까?
어떤 이유건 그것은 비겁함이며, 당신들이 과거 비판했던 권력자들보다 더 한 위선일 뿐입니다.
진짜 자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된다.
남한 86 세대는 왜 북한 동포의 인권 참상에 외면하고 침묵하는가?
왜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자에게만 관대한가?
- 박지현 (맨체스터, UK)
마지막으로 저는 영국에서 배웠습니다.
진짜 자유란,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요.
북한은 단순히 이념이 다른 체제가 아닙니다.
국민의 생존권과 사상, 표현, 종교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전근대적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한국의 86세대가 과거 순수한 마음으로 민주화를 외쳤다면, 오늘날 진짜 억압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서울 광장에서 외칠 수 있는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닙니다.
북한의 밤 하늘 아래 몰래 라디오를 켜고 숨죽여 외국 방송을 듣는 사람들, 진실을 알리려고 목숨 걸고 고군분투하는 북한 내부의 고발자들,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는 여성들과 아이들 속에 살아 있는 게 진짜 민주주의입니다.
그들을 보지 못하는 '민주화 세대'라면, 이미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