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권력은 그 시대의 지식을 독점하는 것이다.”

어제 책에서 읽은 이 문장이 오늘 아침, 북한이 발표한 ‘수재교육’ 강화 소식을 접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2월 22일, 조선중앙통신은 각지 제1중학교에서 ‘수재교육의 특성에 맞는 교육방법’을 창조하고 일반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평양제1중학교, 창덕학교, 김정숙제1중학교를 비롯해 원산·신의주·사리원·강계 등지의 제1중학교들이 그 대상이다.

발표문은 실용화, 종합화, 현대화, 창조성, 사고력 계발 같은 교육학적 수사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언어 뒤에 놓인 것은 지식의 독점과 통제라는 오래된 권력의 메커니즘이다.

- 수재교육의 탄생, 인재 양성인가 체제 선별인가

북한의 수재교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김일성은 “우리는 수재론을 반대한다”고 말하며 평등주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러나 1984년, 김정일은 돌연 ‘수재교육’ 도입을 지시했고, 그 결과 평양제1중학교가 설립됐다.

이 학교는 북한 최초의 과학영재교육기관으로, 이후 각 도에 제1중학교가 세워지며 전국적 체계로 확대됐다. 겉으로는 인재 양성이지만, 실제로는 체제가 선별한 두뇌를 조기에 길들이는 구조였다.

만경대소년궁전을 방문한 북한 컴퓨터 신동들 / 사진 = 연합뉴스 via RFA


김정숙제1중학교에서 수학·물리·화학 과외소조를 운영한다는 대목은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에 봉사할 충성된 기술자를 양성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사리원제1중학교와 압록강제1중학교에서 외국어 학습의 ‘묘리’를 터득하게 한다는 것 역시 세계와의 소통보다는 통제된 정보 접근을 위한 기능 훈련에 가깝다.

- ‘사고력’과 ‘창조성’, 허용된 범위의 자유

북한의 수재교육은 지식을 해방의 도구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지식을 선별하고, 분배하고, 통제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사고력’과 ‘창조성’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지만, 그 사고는 체제의 틀 안에서만 허용되고 창조성 역시 체제에 유용할 때만 장려된다. 지식은 자유를 여는 열쇠가 아니라 복종을 정교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북한의 수재교육은 말하자면 ‘지식의 울타리’를 치는 작업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말하고, 꿈꾸도록 만드는 것. 울타리 바깥의 세계는 곧 ‘적’이거나 ‘혼란’으로 규정된다. 진정한 권력은 바로 이 울타리를 설계하고, 누가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서 나온다.

- 질문 없는 교육, 성장 아닌 조련으로서의 학습

교육은 본래 질문을 낳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발표문 어디에도 ‘질문’은 없다. 오직 ‘숙달’, ‘실천’, ‘효율’, ‘강화’만이 등장한다. 이는 교육이라기보다 훈련이며, 성장이라기보다 조련에 가깝다.

특히 옥전제1중학교와 강계제1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주동적이며 창조적인 사고와 활동을 중시하고 계발시키는 방향에서 실천실기교육을 강화한다”는 대목을 읽으며 발걸음이 멈췄다.

‘창조적 사고’- 이 말은 체제의 언어 속에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 정권은 교과서의 문장 하나, 교실의 질문 하나, 실험의 목적 하나까지도 철저히 통제한다.

전체주의는 말과 행동만이 아닌 사고 자체를 규격화한다. 상상력의 방향을 지정하고, 무엇보다 질문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전체주의 하의 창조적 사고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 아니다. 이미 결정된 세계를 더 정교하게 복제하는 능력이다. 북한 전체주의 수재 교육은 진정한 창조를 시작할 '왜?'라는 질문을 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

그런 체제에서 ‘창조적 사고’란 결국 허용된 범위 내의 창조성, 체제에 유용한 발명, 지도자의 사상에 부합하는 응용력일 뿐이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교 대학생들 / 사진 = 통일부 블로그


다시 말해, 전체주의 하의 창조적 사고란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 아니다. 이미 결정된 세계를 더 정교하게 복제하는 능력이다.

진정한 창조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라고 묻는 순간 기존의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의 교육에서 모든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든 지식은 ‘위대한 수령’의 이름으로 봉인돼 있다. 그 안에서 ‘주동성’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충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문장을 떠올린다.

“진정한 권력은 그 시대의 지식을 독점하는 것이다.”

북한의 수재교육은 바로 그 독점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장치다. 지식은 자유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복종을 위한 무기다. 창조적 사고조차 그 무기의 날을 벼리는 데 동원된다.

그러나 억눌린 상상력은 언젠가 균열을 낸다. 지식은 독점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을 향한 갈망까지 독점할 수는 없다. 교육은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오래된 권리이자, 가장 강력한 저항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박지현

· 아시아 태평양 전략센터 인간안보 연구원

· 스페인 마드리드 프란치스코 빅토리아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원

·《The Hard Road Out: One Woman’s Escape from North Korea》 저자 (유럽에서 8개 국어로 출간. 한국어판은『가려진 세계를 넘어』 (2021 슬로비),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 2026 영국 지방의회 후보자(보수당 후보 확정, Moorside Ward)

· 징검다리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