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프리덤조선)
영국 맨체스터에 거주하는 탈북자 출신 인권운동가 박지현(Jihyun Park) 씨가 2025년 11월 열린 ‘Leviathan Rising Conference 2025’에서 표현의 자유와 전체주의의 위험을 주제로 연설했다.
박 씨는 북한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다가 대량 아사 시기 북한을 탈출, 중국 내에서 인권 탄압과 인신매매 피해, 강제 북송과 재탈출 등의 험난한 여정을 거친 끝에 영국에 정착해 인권 활동을 이어온 인물이다.
북한 및 중국에서의 삶의 경험과 자유 세계로의 탈출을 그린 <The Hard Road Out> (2022년 출간, 공저자 채세린)은 유럽에서 7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며, 북한인권에 대해 무관심하던 유럽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8번째 언어인 스웨덴어로 출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공산권 역사를 경험한 체코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가려진 세계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기록의 진실성과 우수성을 2022년 세종도서로 선정되었다.
체코 카렐대학교에서 열린 책 출간 기념행사에서 박지현(왼쪽)·채세린 작가 / 사진 = 서울신문 via @프리덤조선
영국 정착 탈북자 최초로 영국 보수당(Conservative Party) 후보로 정계에 출사표를 던졌으며, 미국 씽크탱크 및 스페인 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박씨는 본지에 2026년 지방선거 출마 후보로 재확정되었음을 알려왔다.
이번 컨퍼런스 ‘Leviathan Rising(리바이어던의 부상)’은 영국 자유주의 성향 청년 시민단체인 Students For Liberty UK가 주최하고, 런던의 경제정책 싱크탱크 IEA(Institute of Economic Affairs)에서 개최된 행사다. 국가 권력의 비대화와 규제·감시의 확대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토론하는 자리로 소개됐다.
주최 측은 북한 및 중국 전체주의 체제를 직접 겪으며 숱한 고비를 넘긴 생존자로 북한 현실과 반전체주의의 중요성을 알려온 박 씨의 다년 간의 활동에 주목해 이번 컨퍼런스 강연자로 초청했다.
2025년 11월 영국 Students For Liberty가 주최하고 IEA에서 개최한 <LEVIATHAN RISING> 컨퍼런스 선전 포스터. / 사진 = eventbrite 화면 캡처
박 씨는 세계 질서 재편 속에 각국에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부활하는 현상을 날카롭게 주목하며, 이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표현의 자유의 가치'에 대해 연설했다.
“북한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쓴 악…언어로 인간을 지배한다”
박 씨는 연설에서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건 단지 한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 경계 안에서 태어난 것”이라며 “침묵이 언어가 되고 복종이 생존의 조건이 되는 세계”를 증언했다. 그는 북한 체제를 나치즘·파시즘·공산주의·사회주의의 폭력이 결합된 “모든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쓴 악”으로 규정하며, 국가가 교육과 언어를 통해 사고 자체를 통제하는 구조를 강조했다.
특히 그녀는 20세기 전체주의가 철조망과 총으로 사람을 억압했다면, 21세기의 전체주의는 ‘공익’ ‘안전’ ‘정의’ 같은 부드러운 단어로 포장된 감시와 자기검열로 확산된다고 경고했다.
“언어가 조작되면 사고가 조작되고, 사고가 사라지면 자유가 사라진다.”는 박 씨의 진단은 디지털 감시 시대에 표현의 자유가 흔들리는 현실이 품은 거대한 위협을 갈파한 경고로, 청중들은 진지하게 박 씨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
“정보는 늘었지만 생각은 줄었다…디지털 전체주의의 문 앞에 서 있다”
박 씨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누구에게나 발언의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조회수’와 ‘속도’가 진실을 대체하고, 온라인 공간이 증오와 조작의 온상이 되는 역설을 짚었다. 그는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더 적게 생각한다”며, 비판적 사고의 붕괴가 곧 디지털 전체주의의 토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영국과 유럽에서 ‘온라인 안전’ ‘혐오 발언 규제’ 등이 확대되는 흐름을 언급하며, 선의로 포장된 규제가 자유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말을 해도 허락되는가를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1984 안에 들어가 있다”는 발언은 청중의 큰 반응을 얻었다.
리바이어던 라이징 행사 강연자로 초빙된 박지현 씨의 공식 프로필 사진 / 사진 = X 캡처
자유의 자리를 지키는 일,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박 씨의 메시지는 영국 사회를 넘어 동아시아 안보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연설이 그려낸 ‘21세기형 전체주의’는 북한의 극단적 통제 체제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와 연결된 권위주의적 영향권이 주변 지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한반도는 북·중·러로 이어지는 이른바 ‘전체주의 벨트’의 압박과 직접 맞닿은 지정학적 전선에 놓여 있다. 자유를 위한 싸움이 결코 “먼 나라의 담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박 씨의 증언은 대한민국 시민들에게도 현실적 경고로 읽힌다.
전쟁과 분단, 외교적 불확실성이 일상인 한국에서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며, 침묵을 거부하는 개인의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박 씨의 말은 더욱 무겁다.
전체주의는 총칼보다 먼저 언어와 무관심을 통해 스며든다. 북중러 권위주의 축과 숙명적으로 맞서야 하는 대한민국이라면, 지금 이 연설이 던지는 질문, “나는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말하고 있는가, 나는 자유를 지키고 있는가”를 결코 남의 일로 흘려보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