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과 여성의 목소리를 왜 두려워하는가

여성의 인권은 단순한 사회적 권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국가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가장 정밀한 잣대다. 여성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가, 여성의 삶이 존중받는가, 여성의 목소리가 정치와 제도에 반영되는가—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곧 그 사회의 정의와 자유의 수준을 드러낸다.

여성의 정치 참여: 100년의 짧은 역사

여성이 선거에 참여하고, 정치권에 진입한 지는 고작 100년 남짓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페미니즘은 새로운 정치적 언어로 떠올랐지만, 그 목소리는 종종 제도권에 의해 변질되거나 흡수되었다.

오늘날 ‘젠더’라는 프레임은 여성 인권을 포괄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의 경험은 젠더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현실이다.

북한의 사례: 여성 인권에 대한 반응은 왜 즉각적이었나

2014년 2월 7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역사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2014년 9월 13일, 북한은 이례적으로 자체 인권 보고서를 발표하며 반박에 나섰다. 제목은 “DPRK Association for Human Rights Studies”.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의 핵심은 여성 인권이었다.

왜 하필 여성 인권이었을까. 왜 북한은 국제사회가 제기한 수많은 인권 문제 중 여성의 삶을 앞세워 대응했을까. 그것은 여성 인권이 가장 강력한 윤리적 기준선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목소리는 국가 폭력의 가장 깊은 층을 드러내며, 그 침묵을 깨는 순간 권력은 흔들린다. 북한은 그 흔들림을 막기 위해, 여성 인권을 방패로 삼아 국제적 비판을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오히려 역설적이다. 여성 인권을 꺼내든 순간, 북한은 스스로 그 기준선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단순한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 생존자들의 증언과 삶의 무게로 구성된 윤리적 요구다.

침묵을 강요받는 자리에서

오늘 북한 여성 인권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지만, 그 행사는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다. 나는 그 이유를 기술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싶다. 누군가의 압박이나 의도적인 방해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성의 목소리가 꺼지는 순간, 우리는 그 침묵이 단지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구조적인 억압의 반복인지 묻게 된다.

여성 인권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특히 북한 여성의 삶은 국가 폭력의 가장 깊은 층을 증언한다. 그 목소리가 나오려는 순간, 기술적 문제든 정치적 불편함이든, 자리는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우리에게 묻는다—이 사회는 여성의 목소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북한은 왜 여성 인권을 두려워하는가

북한은 헌법에서 남녀평등을 명시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여성은 ‘혁명의 도구’로만 존재한다. 여성은 자녀를 낳고, 남성을 보조하며, 외모와 순종성을 기준으로 선별되어 체제 선전에 동원된다.

대표적인 예가 “5과”라는 조직이다. 이들은 여성들을 음악단, 해외 식당, 공연단 등에 강제 배치하며, 성적 접대와 봉사까지 요구한다. 이는 국가가 주도하는 인신매매이며, 현대판 위안부 시스템이다.

북한은 여성들을 ‘꽃’이라 부르며 미화하지만, 그 표현 속에는 외모 중심의 성차별과 억압이 숨어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외모가 뛰어난 여학생들은 국가에 의해 선택권 없이 동원되며, 문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성적 착취와 충성 자금 마련에 이용된다.

여성들은 교육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필요로 할 때만 노동력으로 활용된다. 고위직 진출은 극히 드물고, 시장 활동에 나선 여성들은 성적 요구와 폭력에 노출된다. 이혼은 여성에게 불명예로 여겨지며, 선택권조차 없다.

가사노동과 생계유지의 이중고 속에서 여성들은 장마당에서 생존을 위해 애쓰지만, 배급제에서는 최악의 배급량인 300g을 받으며 현대판 노예처럼 살아간다. 군 복무 중 여성 인권 유린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여군들의 실태를 알리는 캠페인이 절실하다.

중국에서 공안에 체포되는 탈북난민 출신 어머니를 어린 딸이 울면서 지켜보고 있다. (사진 = 교도 통신/로이터)


감옥과 수용소에서는 임산부와 어린이조차 보호받지 못한다. 강제 낙태, 성폭력, 알몸 검사, 생리권 박탈 등은 일상이며,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여성들은 성폭행과 학살에 노출된다. 중국인 남성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의료 지원 없이 강제 낙태를 당하고, 태어난 신생아는 엄마 앞에서 학살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박탈하는 반인도적 범죄다.

국제법과 UPR: 여성 인권은 국제 기준선이다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아동권리협약(CRC), 장애인권리협약(CRPD) 등에 가입했다. 이는 여성·아동·장애인의 권리를 국제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유엔 인권이사회가 4.5년 주기로 실시하는 UPR(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서 북한은 반복적으로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권고를 받아왔다.

2024년 11월 7일, 북한은 제4주기 UPR 심의를 받았고, 총 294개 권고 중 약 144개를 거부했으며, 그중 상당수가 여성·아동·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권고였다.

국제사회가 여성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명확하다:

• 여성 인권은 국가 폭력의 가장 깊은 층을 드러내는 지표다.

• 여성에 대한 억압은 체제 유지의 도구화다.

•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방식은 국가의 윤리적 기반과 도덕적 붕괴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인간안보의 중심에 선 여성

국가 중심의 안보 개념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개인의 생존, 존엄, 자유를 중심에 둔 접근이다. 이 틀 안에서 여성 인권은 단순한 하위 항목이 아니라, 인간안보의 핵심 축이다.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안전하지 않다. 여성이 말할 수 없는 사회는 평화롭지 않다. 여성의 삶이 존중받지 않는 국가에서 인간안보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특히 북한 여성의 증언은 단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폭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인간안보의 경고음이다.



박지현 아시아 태평양 전략 센터 인간 안보 연구원

박지현

​· 아시아 태평양 전략센터 인간안보 연구원

· 스페인 마드리드 프란치스코 빅토리아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원

· 영국 지방의회 후보자

· 징검다리 공동대표

· <가려진 세계를 넘어> (2022 세종 우수도서) 저자 / <The Hard Road Out> (영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