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동당 제8기 제13차 총회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뒤 폐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회의 결과를 상세히 보도했다.사진=엑스(X, 구 트위터) 캡처


“자유란 2+2=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에서 시작된다.” — 조지 오웰, 《1984》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13차 확대회의를 열었다.

북한은 전원회의를 통해 2025년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로 규정하며 전면적 총공세를 예고했다.

기본 5가지 안건이 상정되었고, 매년 그러하듯 전원회의 발표는 낙관적이었다.

“알곡 생산계획 초과 달성”, “역대 최고 수준의 수확고”,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지속 추진”, “발전소 건설”, “지방발전정책”, “국가방위력” 등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룬 한 해였다고 자랑한다.

매년 회의에서는 숫자와 수식어가 넘쳐났지만, 그 숫자들이 무엇을 증명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을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현실을 대신하는 언어일까.

인터넷 캡처


◆ 전체주의에서 숫자는 명령의 상징이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2+2=5”라는 명제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진실 자체를 다시 쓰려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수식은 단순한 계산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도록 강요받는 세계의 상징이다.

2+2가 4라는 자명한 진실조차 부정할 수 있을 때, 진실은 더 이상 개인의 인식이 아니라 권력의 소유물이 된다.

북한의 선전 구호 “1+1=1”은 또 다른 방식으로 숫자를 정치화한다.

이 수식은 개인과 집단, 지도자와 인민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담고 있다.

수학적으로는 성립하지 않지만, 정치적으로는 충성의 상징이다.

개인은 더 이상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집단 속에 흡수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이 수식이 반복될수록 개인은 숫자가 아니라 소거의 대상이 된다.

엑스(X, 구 트위터) 캡처


◆ 농업 성과 발표, 숫자 없는 자랑

이번 전원회의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농업 분야였다.

북한은 “2025년도 알곡 생산계획을 초과 달성했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수확량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역대 최고 수확고”라는 표현이 동원됐다. 숫자는 존재했지만 사실은 부재했다.

밀 재배 확대, 간석지 농장 현대화, 분배제도 개혁 역시 방향과 의지는 강조되었으나 검증 가능한 수치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발표에서 중요한 것은 성과 그 자체가 아니다.

숫자가 수행하는 정치적 기능이다.

“계획 대비 120% 달성”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수치로 환산한 결과다.

“20×10 정책”이라는 이름 역시 실현 가능성보다 결의와 단결을 상징하는 수사에 가깝다.

숫자는 설명이 아니라 선언이 된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숫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덮는다.

수치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정치적 명령을 정당화하는 언어가 된다.

“100%를 넘는 성과”는 성취의 증거가 아니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완전성의 신화다.

완벽함이 선언되는 순간 질문은 불필요해지고 의심은 배신이 된다.

이런 수치의 정치화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숫자가 말해준다”는 표현을 쉽게 사용한다.

그러나 숫자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누가 그 숫자를 만들었는지, 어떤 기준으로 설정되었는지, 무엇을 제외했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숫자는 언제든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교육은 숫자의 정확성만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숫자가 언제 진실을 말하고 언제 권력을 대변하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숫자를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숫자에 질문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누가 이 수치를 말하게 했는가, 이 수치가 침묵시키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태도야말로 민주주의 시민의 출발점이다.

오웰이 말한 “2+2=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권리의 문제다.

북한의 “1+1=1”은 그 자유의 반대편에 있다.

개인이 집단에 흡수되고 사실이 충성에 종속되는 세계다.

100%를 넘는 수치는 언제나 의심하라.

그것은 성과가 아니라 진실을 가리는 커튼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커튼을 걷어내는 일은 질문하는 교육의 몫이다.

박지현 아시아 태평양 전략센터 연구원


박지현

​· 아시아 태평양 전략센터 인간안보 연구원

· 스페인 마드리드 프란치스코 빅토리아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원

· 영국 지방의회 후보자

· 징검다리 공동대표

· <가려진 세계를 넘어> (2022 세종 우수도서) 저자 / <The Hard Road Out> (영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