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러시아 정부 최고위 기관에 정체불명의 책 한 권이 비밀리에 배포됐다. 제목은 「프로젝트 러시아」. 이후 이 책은 시리즈로 확장돼 5권까지 출간되었고, 수백만 부가 팔리며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정치 서적 중 하나가 됐다.
저자로는 억만장자 유리 샬리가노프가 지목되었지만, 실제로는 크렘린 내부 엘리트 집단의 작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책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푸틴 정권의 이데올로기 청사진으로 작동한다.
"푸틴은 반인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구와 함께 홀로도모르 박물관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사진. '홀로도모르'란 20세기 초 스탈린이 소련의 강제 합병 후 이에 강력히 저항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을 죽이기 위해 대기근 정책을 유도, 약 350만 명을 굶겨 죽인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20세기 후반 북한에서 소위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을 아사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사진 = 홀로도모르 뮤지엄 홈페이지
민주주의는 “환상”에 불과하다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명확하다.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저자들은 미국과 독일, 러시아 어디에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없다고 단언한다. 선거는 단지 “쇼”일 뿐이며, 권력은 보이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 쥐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은 어린아이처럼 ‘사탕 포장지’만 보고 선택할 뿐, 본질을 알지 못한다는 조롱도 담겨 있다. 의회·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은 “변호사의 권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구의 타락, 동성애와 나치즘의 그림자
「프로젝트 러시아」는 서방 민주주의가 결국 도덕적 타락과 범죄, 마약,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고 묘사한다. 특히 성소수자 운동은 서방이 러시아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퍼뜨린 “바이러스”로 규정된다.
저자들은 “서방의 자유는 곧 죄악에 대한 관용”이라고 비난하며, 심지어 서방 민주주의 = 나치즘의 극단이라는 등식을 제시한다. 이는 러시아 정권이 성소수자 권리를 강하게 억압하는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푸틴은 스탈린주의 부활을 위해 러시아 전역에 스탈린 동상 건립을 실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역사 교과서는 스탈린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그는 또한 레닌을 예수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서구 기독교 진영 일부는 크렘린의 세뇌에 속아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그릇된 환상에 빠져 있다. 20세기 초 서구 지식인들이 소비에트가 평등 세상인 이상향이라고 착각하고 공산주의자의 길을 택해 끝내 비극적 전체주의로 끝난 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서구는 곧 적(敵)
이 책은 소련 붕괴를 내부의 실패가 아닌 서방의 심리전·문화전의 결과라고 단언한다. 벨벳혁명,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민주화 운동도 모두 서방의 조종 아래 벌어진 일이라고 서술한다.
또한 서방은 러시아를 분열시켜 자원을 독점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네온사인과 TV 드라마가 폭탄보다 더 무섭다”는 표현은, 소비문화와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무기화된 공격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보여준다.
다가올 세계 붕괴와 러시아의 기회
저자들은 자원 고갈과 과소비로 인해 미국 달러 체제와 서방 문명이 곧 붕괴할 것이라 예견한다. 이때 러시아는 충분한 자원과 강력한 권위주의적 질서를 무기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실제로 러시아는 사이버전, 허위정보 유포, SNS 여론조작, 에너지 무기화 등으로 서방을 이미 흔들고 있다고 강조한다.
푸틴의 목표는 러시아 차르 처럼 종신 독재를 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잠재적 저항 세력일 정적들 암살과 러시아 국민 학살도 주저하지 않는다. 건강하던 러시아 야당 지도자 나발니 역시 푸틴의 독살 시도에서 한번은 살아 남았으나, 러시아로 돌아간 후 극북 지역 추운 감옥에 갇혔고 지난해 갑자기 의문사 당했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 독재에 반발해 다시 대규모 저항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러시아 남성들을 죽이기 위한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
푸틴, “최후의 보루”에서 “세계의 지도자”. “왕자-수도승(Prince-Monk)”으로
책은 푸틴을 단순한 대통령이 아니라 “러시아 체제의 연속성을 지켜온 최후의 보루”로 묘사한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거쳐 이어진 소련 체제의 계승자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푸틴은 장차 러시아를 넘어 초국가적 지도자로 부상해야 한다는 암시도 담겨 있다. 종교적 권위를 포함한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푸틴이 “왕자-수도승(Prince-Monk)”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오직 푸틴의 잔혹한 종신 독재 합리화를 위해 쓰여진 정치적 아부의 산물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프로젝트 러시아>는 민주주의를 철저히 부정한다. 푸틴은 러시아 민주주의를 파괴했고, 종신 통치를 정당화할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프로젝트 러시아>가 탄생한 이유다. / 사진 = 프리덤조선
오직 푸틴의 종신 독재만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
2011~2012년 경, 러시아에는 대대적인 부정선거 의혹 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시위는 구소련 붕괴 이후 최대 규모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소련 붕괴를 이끈 고르바초프 역시 푸틴에게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푸틴은 사임을 거부하고, 시위대와 정적들, 언론인들을 철저히 숙청하고 암살했다. 또한 사법부와 언론, 두마(러시아 의회)를 모두 자신의 측근들로 임명해 권력분립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는 필요없는 것'이라는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장기 집권 독재자들이 흔히 하는 선택처럼,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2014년 크림 반도 불법 침공을 단행했다. 또한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단행하며, 러시아 내부에서 잠재적 저항 세력이 될 저소득층 남성들을 모조리 전선으로 내보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3년 반이 넘는 동안 약 100만 명의 러시아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우크라이나의 군사 시설만 폭격한다는 대외적 선전과 달리, 실제로는 민간 주택가와 학교, 놀이터, 어린이 병원 등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 있다.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으로 우크라이나 병원과 유치원, 학교와 민간 거주지에서도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 사진 = BBC News 캡처
급기야 푸틴은 세계 최악의 불량 국가 북한에서까지 1만 명이 넘는 군인을 용병으로 동원해 유럽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 이런 비극은 모두 푸틴과 그 측근 마피아 체제가 영구 권력을 누리기 위해 초래한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 푸틴과 같은 전범 독재자는 다시는 출연하면 안 된다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 모두의 소망이다.
단순한 책이 아니다
「프로젝트 러시아」는 단순한 정치서적이 아니다. 그것은 푸틴 독재 체제의 정치적 선언문이며, 민주주의와 서구의 자유주의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텍스트다.
Corum 교수는 논문에서 이 책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러시아 정권의 정책과 선전 전략에서 실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러시아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한 우크라이나인. 건장하던 몸이 러시아의 열악한 처우와 고문으로 오른쪽과 같이 변했다. 러시아는 포로 고문 금지 협약을 전혀 지키지 않으며, 전쟁 포로들에 온갖 고문과 학대를 자행한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생환한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사진 윗쪽은 러시아군 포로에서 석방된 한 우크라이나인의 배에 새겨진 고문 흔적. '러시아에 영광을'이라는 글자 등을 복부에 새기며 잔인하게 대우했다. 우크라이나 의사가 소셜에 공개.
사진 아래 왼쪽은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 지뢰로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젊은 우크라이나 부부. 부부는 그래도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며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의족을 단 채 재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자식의 관 앞에서 오열하는 한 우크라이나 늙은 어머니. 이 어머니의 눈물은 곧 독재자들만의 영원한 천국을 위해 1만 명 넘게 푸틴의 용병으로 자식들을 유럽의 전장으로 빼앗긴 북한 어머니들의 눈물이기도 하다. 북한 군인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유럽의 전쟁터로 끌려와 독재자들 야욕에 희생되고 있다. 2025년 여름 영국 군 정보기관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6,000여 명의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러시아 독재자를 위해서만 쓰여진 이 사악한 책에 대한 추가 정보는 다음 링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24690026_Project_Russia_The_Bestselling_Book_Series_of_Putin's_Krem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