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대통령이 철도 폭파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로이터 제공
폴란드 국방부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서부 공습 직후 자국 영공 침범 가능성을 이유로 F-16 전투기와 조기경보기(AWACS, 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를 긴급 출격시키고 전군을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동맹국 항공기와 지상 방공 시스템도 동시 가동되며 유럽 안보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앞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지원 철도 노선 폭발 사건도 러시아 정보기관의 사보타주로 규정되면서 하이브리드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 철도 사보타주 배후 러시아 정보기관 개입 정황 포착…우크라 국적자 2명 체포
폴란드 안보당국은 루블린주 내 우크라이나 수송 철도 노선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을 외국 정보기관이 가담한 사보타주로 규정하고 러시아 정보기관의 개입 가능성을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다.
이 사건은 16일(현지시간) 워싱턴-루블린 간 철도 선로에서 확인됐으며, 우크라이나 지원 물자 수송로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은 친러 성향 우크라이나 국적자 2명을 체포했으며, 이들은 철도 선로와 전력 설비를 고의적으로 파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용의자들은 벨라루스를 통해 폴란드에 잠입한 뒤 군용 폭발물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고, 사건 직후 벨라루스로 도주한 정황이 드러났다.
폴란드 총리 도널드 투스크는 “이들은 러시아 정보기관과 장기간 협력해 왔으며, 사건은 우크라이나 지원 열차를 폭파하려 한 시도였다”고 밝혔다.
폴란드 검찰은 이 사건을 “테러 성격의 사보타주”로 분류하고 외국 정보기관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한 용의자는 우크라이나 류비우 법원에서 이미 사보타주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으며, 다른 한 명은 러시아 점령지 돈바스 지역 출신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 인프라 파괴 공작 패턴과 일치하며, 러시아 측은 부인 가능성을 위해 제3국 인물을 활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폴란드 외교부는 이 사건에 대응해 러시아의 마지막 영사관인 그단스크 영사관 운영을 중단시켰으며, 러시아 외교관의 EU 내 이동 제한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여권 소지자를 모집해 하이브리드 작전을 수행 중”이라며 폴란드와 공동 대응 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 러시아 미사일 공습에 폴란드군 즉각 대응… 나토 공동 작전 가동
러시아군은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특히 폴란드 국경 인근에 470대의 드론과 48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 지역에서 19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으며, 에너지 인프라가 대거 파괴됐다.
폴란드 국경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을 타격했으나 미사일 이동 경로가 자국 영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폴란드군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폴란드 국방부는 F-16 전투기와 조기경보기(AWACS)를 출격시키고 지상 기반 방공 시스템, 레이더, 장거리 정찰 체계를 최대 가동했다.
동부 국경 전역에서 공중 감시를 강화했으며, 나토 동맹국인 네덜란드 F-35 전투기, 독일 패트리어트(Patriot) 방공 시스템, 이탈리아 AWACS 항공기, 노르웨이·스페인 항공기가 공동으로 폴란드 영공을 순찰했다.
폴란드 작전사령부는 “러시아 미사일과 드론의 영공 침범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습 직후 폴란드 동부 르제쇼프와 루블린 공항을 일시 폐쇄했으며, 나토 사무총장 마크 루테는 “러시아의 반복적 영공 위반은 나토 결속을 시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폴란드 총리 투스크는 나토 이사회에 제4조(집단 협의) 발동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며, 이는 회원국 안전 위협 시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
◆ 유럽 안보 위협 고조… 러시아 하이브리드 공작 패턴과 나토 확전 시나리오
우크라이나 지원 물류의 핵심 거점인 폴란드에서 사보타주와 공습 대응이 연이어 터지면서 나토 내부의 우려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단호히 차단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작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한편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유럽 전역에서 철도·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55건 이상의 사보타주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철도 폭발 역시 제3국 인물을 내세워 부인 가능성을 확보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지원로를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회색지대 전략으로 평가된다.
이는 단순한편 물자 수송을 지연시키는 동시에 유럽 내에서 “지원 비용이 너무 크다”는 반우크라이나 여론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토 조약 제4조는 회원국이 영토 보전이나 안전에 위협을 느낄 경우 긴급 협의를 요청할 수 있는 조항으로, 이미 폴란드 총리 도널드 투스크가 발동 검토를 공식 언급한 상태다.
만약 상황이 영공 근접 침범이나 반복적 대형 사보타주 단계로 넘어가면 제4조 협의가 본격화되고, 폴란드 영토에 대한 명백한 무력 공격이 발생할 경우에는 제5조(집단 방위) 발동 논의가 불가피해진다.
최악의 경우 나토 전체가 전면 개입하는 통제 불능 확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우려다.
실제로 제5조가 발동된 유일한 사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지원 작전이었다.
폴란드 국방장관 블라디슬라프 코시니아크-캄시즈는 “75마일(약 120킬로미터) 구간에 대한 철도 점검을 대폭 강화하고 동맹국들과 공동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