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헬싱키 위원회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장기적 대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4년 10월 1일 자로 발표된 이 보고서에서 헬싱키 위원회 의장 조 윌슨 의원(연방 하원 의원, 공화당/사우스 캘리포니아 주)은 발간사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자유세계의 접근 방식, 즉 러시아를 세계 경제 시스템에 묶고, 러시아의 과두 정치가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러시아를 동등한 국가로 대하는 방식은 완전히 실패했다.(The free world’s approach of the previous thirty years – to bind Russia into the global economic system, make Russian oligarchs wealthy, and treat Russia as an equal – has decisively failed.)"고 공식 인정했다.
보고서는 구소련 해체 후 30년이 지나도 러시아의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실질적으로 진전된 것이 없음을 지적하며, 러시아의 국내적 억압과 외부 침략은 동전의 양면으로 푸틴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되며 세계 안보에 큰 위협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장기 전략을 촉구했다.
특히 러시아가 자유세계에 통합되기 위한 내부 장애 목록을 적시하며, 이란과 중국, 북한과 같은 적대적 국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 양당과 행정부 모두 북한을 세계 평화와 안보를 해치는 가장 위험한 국가로 간주하는 변함없는 시각을 보여준다.
2024년 헬싱키 위원회 최신 보고서 표지.프리덤조선
◆ 러시아의 장기적 위협에 대한 전면 재고를 촉구
다음은 미국 헬싱키 위원회 의장의 새 보고서 발간 취지 전문이다.
미국 의회에 전하는 편지
헬싱키 위원회 (유럽 안보 협력 위원회)
워싱턴 D.C.
2024년 10월 1일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러시아는 오늘날 세계에서 미국의 국가 안보와 번영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미국과 동맹국에 대해 부패한 네트워크, 방해 행위, 암살 등을 통한 그림자 전쟁에 참여하여 자유 사회를 공격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전면 침공 후 러시아는 오랫동안 전 세계인에게 자유를 선택하도록 영감을 준 미국 주도 세계 질서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엄청나게 확대했습니다.
러시아는 테헤란과 베이징의 동료 독재자들이 훨씬 더 호전적인 길을 추구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안정을 보장해 온 모든 국제 규범과 이상을 훼손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그 같은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자유세계의 접근 방식, 즉 러시아를 세계 경제 시스템에 묶고, 러시아의 과두 정치가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동등한 국가로 대해온 방식은 확실하게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무력 통치를 통한 독재자가 법의 통치를 가진 민주주의를 침략하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갈등 속에 있습니다.
헬싱키 위원회의 이 보고서는 유럽과 유라시아 지역(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의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그 중심에는 러시아에 대한 현실적 개념이 있습니다. 러시아를 전환기에 있는 국가 또는 더 나쁘게는 "동료" 강대국으로 보는 대신, 미국은 러시아가 이웃 국가인 유럽과 더 나아가 전 세계에 대해 수 세기 동안 폭력적인 제국주의 역사를 가진 국가임을 이해해야 하며, 장기적인 경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푸틴의 러시아는 오직 공격적 행동을 저지당할 때만 침략을 멈출 것입니다. 소련 붕괴 당시 존재했던 러시아에 대한 희망은 러시아가 가까운 미래에 변화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군사적으로 약하며, 모든 각도에서 진정한 변화 - 단지 한 독재자를 다른 독재자로 바꾸는 것 이상으로 - 가 러시아 내부에서 요구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가 이 시점에 도달한 것에 대해 저보다 더 실망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를 방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혼란스러웠지만 그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번영의 씨앗을 보았고, 진심으로 그것들이 꽃을 피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러한 희망을 유지했고, 러시아에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슬프게도 이 손은 계속해서 거부당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에 대해 맹점을 보유했고, 러시아가 스스로에 대해 하는 선전을 믿었습니다. 더 이상은 아닙니다. 우리는 러시아가 폭력적이고 복수적인 세력이며, 전 세계에 최대의 혼란을 초래할 국가로 재편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러시아에도 진정한 연방주의가 도래하고,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이 자국 국경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웃 국가들을 식민지화하거나, 세계 다른 곳에서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조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인의 안전을 보장하고, 동맹을 강화하며, 전례 없는 수준으로 인간의 자유와 번영을 가능하게 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악의적인 러시아의 영향력이 행사되는 곳 어디에서나 대응해야 합니다.
- 진심을 담아, 미국 헬싱키 위원회 위원장 조 윌슨
2024년 10월 1일 미국 헬싱키 위원회 보고서 조 윌슨 위원장 발간사 원문.프리덤조선
◆ "30년간 미국과 서구의 러시아에 대한 접근 방식, 완전히 실패"
보고서는 러시아가 권위주의 모델을 벗고 국민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도 자유화 과정은 어렵고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국 내 억압과 외국에 대한 침략은 함께 하는 것이기에, 러시아 내부의 발전은 미국의 외교 정책과 매우 관련이 높음을 강조하며 러시아가 이웃 국가를 계속 침략하는 한 평화롭고 안정된 러시아에 대한 희망을 버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보고서는 이를 러시아의 '공식적 신식민지 정책'(Russia’s official neocolonial policy)이라 부르며, 러시아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 공화국들과 이웃 국가들을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계속해서 때릴 수 있는 샌드백으로 간주한다고 개탄했다.
또한 비즈니스 및 일상 모든 면에 만연한 러시아의 부패 문화를 지적하며, 크렘린궁의 범죄 및 후원 네트워크가 독재 정권에 대한 충성을 보상하고 이에 반대하는 자들을 처벌하므로 정상적인 국가나 행위자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동시에 비윤리적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푸틴은 사법부를 완전히 개인 권력으로 종속시켜 반대자들과 대중들을 처벌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도구로 삼고 있다며,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법치주의가 작동한 역사가 전무하므로 러시아 사법부는 완전히 재건되어야 할 기구라 지적했다.
보고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만 러시아의 긍정적 변화가 가능하지만, 이 또한 언론과 집회의 자유 기반 위에서만 가능함을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천연자원에 기반한 부를 통해 다른 국가들을 계속 인질로 잡을 것이므로, 미국은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 다각화할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어 GRU(러시아 정보 총국)와 FSB(러시아 연방 보안국, KGB 후신)는 소련 붕괴 후 전혀 의미 있는 정화(lustration)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반대자들에 대한 위협과 감시, 암살에 관여하는 푸틴 개인의 암살 집단으로 전락해 러시아 내외의 푸틴 반대자들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으로 남아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러시아 국민은 온라인에서 독립 미디어에 접근할 수는 있지만, 대다수 러시아인은 자신들의 사고를 재고할 수 있는 대체 정보 소스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므로, 러시아가 아무리 구소련에서 벗어났어도 수십 년 세월의 음험한 선전을 갑자기 되돌릴 수는 없는 상태라고 보고했다.
헬싱키 위원회는 이러한 문제 중 어느 것도 빠르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러시아에는 리더십과 공식 비공식 정부 및 사회 구조 전반을 개혁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포함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며, 스스로 근현대사 및 더 오래된 역사에서 자행한 가장 추악한 역할들에 대한 통찰 없는 바람직한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헬싱키 위원회 보고서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s://csce.gov/wp-content/uploads/2024/09/Contesting-Russia-Report-1.pdf
◆ 헬싱키 협정의 역사적 중요성
미국 헬싱키 위원회( https://www.csce.gov/ )는 유럽, 유라시아, 북미 57개국에서 인권, 군사 안보, 경제협력 증진을 위해 설립된 공식 미국 정부 위원회다.
1976년 6월 3일 미국 의회 의원들은 공법 94-304(Public Law 94-304)를 통해 이 위원회를 설립했으며, 총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18명은 미국 의회 소속으로, 상원 의원 9인, 하원 의원 9인(각 원 다수당에서 5인, 소수당에서 4인)은 각각 상원의장과 하원의장이 선정한다. 나머지 3명의 위원은 미국 대통령이 국무부, 국방부, 상무부에서 임명하며, 통상 차관보 급으로 임명한다.
위원회는 각국 정부로 헬싱키 최종 의정서(the Helsinki Final Act)를 준거로 인권 개선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특히 "최종 의정서 조항을 준수하거나 위반하는 서명국의 행위를 모니터링할 것"을 허가하고 지시한다. 특히 인권과 인도주의 분야의 협력 관련 조항에 포커스를 두고 있으며, 이 위원회의 권한은 최종 의정서가 다루는 다른 영역, 즉 경제협력과 참여국 간의 인적 및 사상 교류로 확대된다.
헬싱키 최종 의정서 혹은 헬싱키 협정은 1975년 7월부터 8월 사이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유럽 안보 협력 회의(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에서 채택된 최종 합의 문서다. 이는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설립 배경이 되었다.
이 협정은 소련을 포함한 유럽 33개국, 미국, 캐나다 35개국 정상이 서명했다. 협정 참여국들은 <유럽 안보의 기초와 국가 간 관계 원칙에 관한 일반 선언>이라고 명명된 최종 문서에 조인했다. 많은 국가가 이 조약을 승인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30년에 걸친 유럽 지역에서의 냉전을 종결이라는 큰 성과를 도출했다.
◆ 김영호 통일부 장관,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 중요"
한국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오래전부터 이 헬싱키 협정을 중시했다. 이미 2009년 언론 기고를 통해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2018년 토론회에서도 '민족공조 노선에 휘말리지 말고 국제공조를 통해 인권 문제를 압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통일미래기획위원장 시절이던 지난해 3월에도 "1975년 헬싱키 모델에 따라 북핵 문제, 경제협력, 북한 인권 문제를 삼위일체로 묶어 추진하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가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이 방안에 기초해 북한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강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헬싱키 협정 체결 당시 서방이 사상과 양심, 종교와 신앙 등 기본적 자유와 인권 존중, 인간 평등과 자결권 보장 등의 가치를 비민주국가인 소련에 끝까지 요구하며 조약에 포함시켜 관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북러 밀착이 강화되며 신냉전이 거론되는 시대에, 미국 헬싱키 위원회가 러시아에 대한 그간 서구의 접근이 완전히 실패했으며, 앞으로 러시아에 대해 전면적 시각 전환과 새로운 장기 전략 채택의 주문이 향후 어떤 성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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