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나는 중국공안의 스파이 임무를 받았다!"...'중국 공안 감금' 탈북민 증언

이애란 승인 2024.08.27 15:26 | 최종 수정 2024.08.27 15:35 의견 0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있는 탈북여성들.서울 1TV블로그

중국공안당국이 한국 행 탈북민들과 중개(브로커)라인을 색출하기 위해 중국 체류 탈북민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25일, 중국에서 12년을 체류하다 지난 5월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조모씨(45세)씨는 프리덤조선에 중국체류 과정에 공안당국의 공갈과 협박, 회유로 원하지 않는 스파이공작을 하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조씨에 따르면 조씨는 2011년 1월 5살된 아들과 함께 탈북해 흑룡강성 목단강에 있는 한족마을에서 2023년 4월까지 살았다고 한다. 2022년 11월 북한에서 데리고 온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오려고 연길에 나왔다가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연길감옥에서 2개월정도 수감되었는데 이때 중국공안당국은 한달간 시간을 줄테니 “인신매매”선을 잡아 신고해달라고 했다는것이다.

조씨는 조씨의 중국 한족남편이 중국동 5만위안 이상되는 뇌물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인질로 잡고 조씨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몸속에 감추고 한국행 탈북민대열에 섞여 탈북일행을 적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씨와의 인터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기자: 어떻게 되어 탈북하게 되었습니까?

조씨: 저는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구역에 살다가 지난 2011년 1월, 함경북도 회령시에 살고 있던 친척언니 소개로 5살 짜리 아들하고 같이 탈북해서 흑령강성 목단강에 있는 한족마을에서 지난 2023년 4월까지 살았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처음부터 중국에서 살기를 결심하고 탈북하셨습니까?

조씨: 아닙니다. 사실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해서 강을 넘었는데, 그때 나를 한국으로 보내주기로 한 브로커가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기다렸는데 나를 중국 룡정까지 안내했던 브로커가 한국 브로커들이 공안에 잡혔다며, 그래서 잠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롱그방(봉고차)에 태워 목단강으로 보냈습니다. 그당시에는 몰랐는데 저는 그때 중국돈 2만위안에 팔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 중국 공안에 대한 제보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중국공안에 체포되셨던적 있나요?

조씨: 예. 2022년 11월에 조선(북한)에서 데려고 나온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오려고 연길에 나왔다가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연길 감옥에 2개월 정도 수감된 적이 있습니다.

기자: 2개월 정도 있다가 풀려나왔다는 얘기인가요? 보통 탈북민들은 체포되면 강제송환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씨: 그렇습니다. 대부분 북송됩니다. 전 그래도 한족 남편쪽으로 공안쪽에 친척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중국돈으로 5만(1000만원)위안 정도 고였다(상납)고 합니다.

기자: 그럼 중국인 남편이 중국돈 5만 위안을 주고 구출한거네요. 남편한테 여사님이 한국으로 가는 일을 합의 했었습니까?

조씨: 아닙니다. 제가 중국에서 출산한 12살 짜리 딸애가 있습니다. 시댁은 농장일을 하지만 살림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2018년인가 한번 남편한테 내가 한국에 먼저 가서 국적을 따고 당신이랑 애들을 초청해서 한국에서 살면 어떻겠냐고 얘기 한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엄청 화를 내면서 안된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갈 결심을 하고도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국에 도착해 국적을 따면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그동안 딸을 잘 돌봐달라는 편지를 남기고 떠났었습니다.

공안은 그렇게 뇌물을 먹고도 순순히 놔주지는 않았습니다. 감옥소에서 출소하는 날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달 간 시간을 주니까 “인신매매”선을 잡아 신고를 하라는 겁니다. 그동안 아들은 자기네가 잘 돌보고 있겠다면서 말입니다.

기자: 그럼 아들을 감옥에 두고 나왔다는 겁니까?

조씨: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들을 두고 나갈 수 없다고 했는데, 남편이 너라도 먼저 나오라고, 공안이 아무리 그래도 조선말을 하나도 못하는 아들을 조선으로 보내겠다며 자기가 꼭 빼내겠다고 하는 겁니다. 결국 남편 말을 믿고 애를 두고 출소했습니다.

기자: 그럼 그 이후 공안쪽과 계속 연락을 하신겁니까? 어떻게 하신 거죠?

조씨: 몇번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2개월 정도 지나 한국 브로커 선이 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공안에 바로 전화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풀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복을 한 공안이 집에 찾아와 외투 단추정도 크기의 물건을 주면서 몸 깊숙한 곳에 잘 감추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위치추적 장치정도 된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다음날 연길에서 한국 행 대오에 합류했고, 북경을 거쳐 쿤밍까지 버스와 차량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동안 공안과 연락은 할 수 없었습니다.

기자: 그럼 공안은 일행을 체포하지 않고 쿤밍까지 이동을 지켜봤다는 얘기인가요?

조씨: 예. 저한테 핸드폰이 없으니까 연락 할 수는 없었고, 개별 행동을 허용하지 않아 공중전화에 접근할 시간도 안됐으니까요. 제가 속한 일행 5명이 쿤밍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벌써 6명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일행 중에는 6세와 등에 업혀 있는 돌을 갖 지난 애기가 있었습니다. 애들을 보는 순간 양심이 찔렸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기자: 아. 공안당국이 그 순간을 노린 것 같네요. 공안이 출동했습니까?

조씨: 아닙니다. 저희들이 도착하니까 대기하고 있던 일행의 브로커가 모두 봉고차에
타라고 했습니다. 그때 공안이 착용하라고 준 추적기를 그 숙소집 아궁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차량에 탑승해 강변에 도착했고, 배를 타고 태국에 도착했습니다.

기자: 그럼 그 이후 아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조씨: 태국에 도착하자 마자 공중 전화로 남편을 찾았습니다. 남편한테 태국에 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정말 잘 했다고 응원해 주는 겁니다. 그리고 아들은 꼭 뽑을 테니까 무사히 가기만 하라구요. (눈물…)

그렇게 한국에 왔습니다.

기자: 그럼 아들은 현재 연길 감옥에 있는가요? 아님 강제송환 된건가요?

조씨: 아닙니다. 출옥해서 중국 남편과 함께 있습니다.

기자: 앞으로 아들이나 딸 남편을 비롯한 가정을 한국에 데리고 올 의향이신가요?

조씨: 예. 꼭 데리고 오고 싶습니다.

기자: 예. 가족의 무사 귀환 기원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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