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두코바니 원전.(사진=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프랑스 출신 유럽연합(EU) 고위 당국자의 계약 중단 요구로 위기에 직면했다.

26조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한수원이 프랑스전력공사(EDF)를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EDF의 법적 공세로 이미 계약이 보류된 상태다.

EU의 압박이 프랑스 이익을 위한 편파적 개입이라는 체코 측 반발이 거세지며 사업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럽매체 유락티브는 12일(현지시간) 루카시 블체크 체코 산업통상장관의 공영방송 CT 인터뷰를 인용해,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이 한수원과의 원전 계약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체코 정부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블체크 장관은 서한이 “EDF의 시각과 의견을 반영한다”며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세주르네가 프랑스 외무장관 출신임을 언급하며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얀 리파프스키 체코 외무장관도 CNN 프리마 뉴스에서 “세주르네가 EDF의 소송 제기 당일인 지난 2일 금요일 밤 10시에 서한을 보냈다”며 “매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EDF는 한수원과의 입찰 경쟁에서 탈락한 뒤 체코 브루노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 지난 6일 본안 판결 전까지 한수원과 체코전력공사(CEZ) 자회사 간 최종 계약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얻어냈다. 이로 인해 7일 예정됐던 계약 서명식이 무산됐다.

EDF는 또한 한수원이 EU의 역외보조금규정(FSR)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EU 집행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FSR은 2023년 7월 도입된 규정으로, EU 외 기업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 공공입찰에서 불공정 경쟁을 할 경우 입찰 참여를 제한한다.

세주르네는 서한에서 “계약 서명 시 보조금 조사 권한과 시정 조치 능력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EDF의 주장에 대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았으며, 체코 원전 입찰은 2022년 3월 시작돼 FSR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다만, 웹 검색에 따르면 한수원이 2024년 4월 체코 측에 금융 지원 의향서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두코바니 6호기 및 테믈린 3·4호기 프로젝트 수주 시 “최적의 금융 조건”을 고려한다고 밝혔으나, 한수원은 “5호기는 체코 예산으로 진행되며 금융 지원 약속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체코 측은 프랑스의 개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니엘 베네시 CEZ 사장은 CTK통신에 “프랑스가 원전 건설을 방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정부가 EU 요구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체코 정부는 8일 내각 회의를 열고 한수원과의 계약을 사전 승인했으며, 페트르 피알라 총리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수원의 제안이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계약은 여전히 보류 중이다.

프랑스는 EDF의 입찰을 적극 지원해왔다. 2023년 3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체코를 방문해 수주 협조를 요청했으며, EDF는 프랑스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국영기업이다.

토마스 레니에 EU 대변인은 “세주르네가 자국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혹은 단일시장 보호를 위한 법 집행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X 게시물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한수원이 EU의 정치적 압박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수원은 2024년 7월 두코바니 원전 2기(5·6호기) 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의 수출 쾌거를 이뤘다.

사업비는 약 26조 원으로, 2029년 착공해 2036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EDF의 법적 공세와 EU의 개입으로 계약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수원의 기술력과 경제성이 프랑스의 외압을 이겨낼지, 아니면 글로벌 패권 다툼의 희생양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