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김인수 씨
6·25전쟁 당시 북한 주민으로 구성된 미군 특수부대인 8240부대에서 복무한 김인수씨의 생전 모습. 사진은 2023년 6월 1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김씨 자택 앞에서 촬영됐다.(사진=연합뉴스)
6·25전쟁 당시 북한 피난민으로 미군 특수부대에서 활동한 김인수 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5일 전해졌다.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시 부고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3월 31일 타계했으며, 향년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1932년 6월 23일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기독교 집안 출신으로, 6·25전쟁 발발 후 공산당의 종교 탄압을 피해 몸을 숨기다 1950년 10월 평양을 탈환한 유엔군에 합류하며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김 씨는 2023년 국내 기간 뉴스 통신사인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유엔군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저는 의학을 공부했고 조부님 덕에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며 합류 계기를 밝혔다.
유엔군 후퇴로 남쪽으로 피난한 그는 1951년 미8군 제8240부대에 입대해 미군 소속 '북한 유격대'(North Korean Partisan)로 활동하며 동·서해안 섬을 거점으로 적진 침투, 첩보 수집, 보급로 타격, 포로 구출 등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TLO(Tactical Liaison Office) 소속으로 적군 이동 경로, 무장, 지형 정보를 모았고, 의학 지식을 살려 야전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다.
6·25 참전용사 김인수씨
6·25전쟁 당시 북한 주민으로 구성된 미군 특수부대인 8240부대에서 복무한 김인수씨가 제대 후 미국으로 이민 간 젊은 시절의 모습.(사진=연합뉴스_
생전 그는 "난 죽이는 게 싫어서 사람을 직접 쏘진 않았다"면서도 "내가 제공한 정보로 많은 이가 포로에서 벗어났다"고 회고했다.
동료들이 전사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그는 "축복 같다"면서 "살려고 산 게 아니라 싸우다 보니 살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정전협정 후 8240부대원들은 한국군으로 배속됐지만, 북한 출신 미군 소속이라는 특수성 탓에 한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했고, 미군도 수십 년간 활동을 비밀에 부쳐 대우가 미흡했다.
약 60년이 지난 2014년 8월 5일, 김 씨는 척 헤이글 당시 미 국방부 장관 명의 감사장을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로 참전용사 대우를 받지만, 8240부대원 다수가 공로 없이 잊혀졌다"며 "돈 한 푼 못 받고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고 안타까워했다.
1965년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결핵환자 요양원, 보스턴 병원 연구실을 거쳐 워싱턴DC에서 45년간 동·서양 의학을 접목한 병원을 운영하며 제2의 삶을 일궜다.
유족으로는 딸 김원주 씨와 아들 김브라이언 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