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북한인권단체의 주최로 진행된 국제모의재판.연합뉴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가족의 존재는 단순한 인권침해를 넘어, 탈북민 사회 전체를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제22회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준비 중인 사단법인 겨레얼통일연대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 지난 1월 5일부터 북한 내 정치범수용소 피해자 가족을 대상으로 인권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부모, 자녀, 형제 등 직계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탈북민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100명이 넘는 피해자 명단이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대는 탈북민 단체장 및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통해 호소문을 발송하며 “우리의 가족을 가둔 감옥은 결코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반드시 외부에서 감옥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피해자 가족의 동의를 받아 30명이 넘는 "정치범수용소"피해자 사진과 강제실종의 인권정보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번 인권조사의 핵심 목적은 피해 가족들의 진정서를 수집하고, 정치범수용소 내 인권유린 실태를 유엔과 국제사회에 보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탈북민 다수는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가족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는 다른 가족들이 또다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다.
수원시에 거주 중인 한 탈북민 정 씨는 “동생들과 조카가 수용소에서 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북한에 큰딸과 어머니, 막내동생이 남아 있어 어떤 공개적 활동도 두렵기만 합니다. 혹시라도 그들까지 잡혀가면 그 죄책감으로 제가 무너질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다.
그는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마다 “공화국을 반대하는 일에 절대 나서지 말라”는 당부를 듣는다고 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탈북민 이 씨는 2014년 탈북 과정에서 아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 이후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중국 내 탈북민 구출사업, 대북전단 살포 등 다양한 인권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모두 비공개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유는 북한에 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보위부가 저의 탈북 사실과 아들의 수감 사실을 알기 때문에, 딸은 요시찰 대상으로 특별 감시를 받고 있을 겁니다. 딸까지 잃을 수는 없어요”라며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북한 정치범수용소가 단순한 감금 시설을 넘어, 탈북민 전체를 침묵하게 만드는 심리적 감옥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북한은 탈북자를 적대국의 간첩 혹은 반역자로 규정하고, 남은 가족에게 연좌제를 적용함으로써 공개적인 증언과 활동을 차단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침묵을 넘어 증언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단법인 겨레얼통일연대 관계자는 “탈북민 개개인의 두려움은 이해하지만, 그 피해의식을 넘어서야만 국제사회의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결국 정치범수용소의 문도 열 수 있다”는 확신에서 이번 인권조사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번 인권조사는 단지 통계자료를 모으는 활동이 아니다.
이는 탈북민이 다시 목소리를 되찾는 과정이자, 국제사회에 진실을 알리고 북한인권을 위한 국제적연대를 요청하는 신호탄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이제 탈북민의 침묵을 강요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지만, 그 족쇄를 끊는 열쇠는 탈북민 사회의 연대된 외침 속에 있다.
한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