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보는 문학의 힘 2 “땅에 떨어진 노벨상 권위 논란, 그러나 위대한 문학은 북한해방을 앞당길 것”

- ​링컨 대통령, 흑인 노예 해방 숨은 공로자로 <엉클 톰스 캐빈> 저자 스토우 여사를 꼽아

이유준 승인 2024.10.16 11:48 | 최종 수정 2024.10.16 11:54 의견 4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 대통령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문학의 중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링컨은 흑인 노예 해방을 이끈 남북 전쟁 승리 후, 미국 사실주의 작가이자 노예제 반대론자 해리엇 비처 스토우 여사를 만났다.

링컨은 1852년에 스토우 여사가 쓴 <엉클 톰스 캐빈>을 거론하며 '우리를 승리로 이끌게 하신 분이 바로 당신이었군요.'라며 악수를 나누었다. 이 작품은 국내에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흑인 노예 해방을 이끈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대통령과 해리엇 스토우 여사


소설은 아니지만 홀로코스트 기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끔찍한 체험을 기록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역시 큰 감동을 준 저서다. 이 책은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타인을 도우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체험을 기록했다.

1991년 미국 의회 도서관과 이달의 북클럽 공동 조사에서 ‘미국에서 나온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0권’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또 저자가 사망할 때까지 24개 언어로 1억 권 이상 팔려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 이상과 다른 공산주의 체제 모순을 폭로한 위대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솔제니친 그리고 조지 오웰과 톨스토이

스탈린 공산 체제 굴라크, 즉 악명 높은 시베리아 정치범 수용소에서 긴 세월을 보낸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노벨문학상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다. 그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 같은 작품은 언제 읽어도 문체의 탁월함과 담담한 객관성, 지적인 위트가 새롭게 다가오는 명작이다. 소비에트 공산 독재 전체주의의 악마성을 효과적으로 폭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각을 잃지 않았다.

소련 수용소의 실태를 폭로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솔제니친은 구소련 독재 정권과 인권 탄압에 저항하다가 투옥과 유배, 망명과 귀환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수용소 생활 중 어느 하루를 뽑아 특유의 치밀함과 섬세함, 위트를 담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써서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

노벨문학상은 받지 않았어도, 그 이상 영향력 있는 위대한 작가도 많다.

스페인 내전 경험을 통해 좌익 혁명 권력의 악마성을 처절히 겪고 사회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전향한 후 이를 폭로하는 탁월한 풍자 소설을 써낸 조지 오웰이 대표적이다. 그의 천재성은 <동물 농장>, <1984> 등의 작품을 통해 공산주의의 본질과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 풍자를 통해 꿰뚫어 보았다.

<전쟁과 평화>, <부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님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리신다> 등을 써낸 톨스토이는 당대 이미 유럽 최고 작가로 꼽혔다. 그가 스웨덴 한림원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부당하게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 2018년 땅에 떨어진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권위, 2019년 공동 수상자 모두 부적절한 수상자라는 거센 반발에 직면

최근 수년 사이 스웨덴 한림원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2018년 미투 운동으로 그간 은폐됐던 한림원의 성폭행 사태가 폭로되며 최악의 추문이 터졌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상 파장이 컸다. 20년간 한림원 소유 아파트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한 엽기적인 강간범 아르노가 노벨문학상 위원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부는 한림원 재정으로 문화 센터를 경영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부부 범죄단이란 비난이 빗발쳤고, 사퇴 여론이 높아졌다.

문제가 터진 후에도 한림원은 폐쇄적이고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종신직 노벨상 심사위원이라는 특권에 익숙한 이들은 규정상 중도 사퇴를 할 수 없다며 문제를 더 키웠다. 그러나 금융 비리 스캔들에, 수상자 사전 유출 스캔들까지 터지며 여론은 더욱 차가와졌다.

급기야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16세까지 나서 “최근의 사회 발전을 고려해 한림원 종신제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림원은 프로스텐손의 노벨문학상 위원 지위를 유임시켰다. 그러자 다른 노벨문학상 위원 7명이 줄줄이 사임을 표했다. 스웨덴 문화계 인사 무려 100여 명은 한림원의 신뢰 회복은 사실상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노벨문학상 대안으로 그해 7월 한림원과 유사한 ‘뉴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해 노벨문학상은 결국 취소됐다.

하이켄스텐 노벨 재단 사무총장은 한림원이 문제를 빨리 해결 못하면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정당성을 되찾지 못하면 아예 다른 기관에 수상자 선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식 있는 스웨덴 문화계 인사는 이미 그때 다 빠져나갔다는 평가가 있으나,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 기득권 유지를 모색했다. 다음 해 2019년에는 2인의 공동 수상자를 발표했다.

그러나 두 작가 모두 자국 및 유럽, 미국에서도 최악의 부적절한 수상자라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폴란드 출신 여성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좌익 페미니스트 작가다. 노골적인 좌익 특유의 자학 역사관으로 폴란드 우파 애국 진영을 자극했다. 폴란드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토카르추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격분했고, 폴란드어로 가장 악랄한 국가의 적을 뜻하는 ‘targowiczanin’로 부르며 항의했다.

일부 애국 단체는 시의회에 그녀의 명예 시민권 박탈도 요청했다. 폴란드 법과 정의당 소속 상원 의원도 지지했다. 출판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보디가드를 고용해야 했다.

왜 올해 노벨문학상 공동 수상자는 이토록 논란이 많은가’라는 제목의 2019년 복스(Vox) 보도


또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는 더 심각했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학살한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의 공개 지지자였다. 세르비아 초대 대통령으로 부패한 공산 독재자였던 밀로셰비치는 인종 청소를 벌이며 1990년대 옛 유고연방을 피로 물들였다. 그는 국제 사법 재판소에서 전쟁 범죄자로 국제 형사재판을 받다가 감옥에서 자연사했다.

한트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유럽 양심 세력을 크게 자극했다. 분노한 많은 이가 ‘스웨덴 한림원은 이제 공산 독재자와 학살자, 좌파 페미니스트 작가에게만 노벨문학상을 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느냐, 노벨문학상 자체를 폐지하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미 전년도 한림원 역사상 최악의 추문으로 노벨문학상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이런 부적절한 선정 논란은 예정된 참사였다. 그러나 한림원은 수상을 취소하라는 여론에 나름의 선정 기준이 있다며 외면했다.

◆ 서구에 대한 솔제니친의 46년 전 경고와 한국 문학이 나갈 길

다시 솔제니친으로 돌아와서, 동서 양쪽 세계를 모두 체험한 그는 이미 1978년 <탈진한 서구(The Exhausted West)>라는 기고에서 서구가 용기와 영적 방향을 상실했다고 경고했다.​

그는 소련에서 추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8년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했는데, 같은 해 위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

“서구 세계는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 각 국가, 각 정부, 각 정당, 그리고 물론 유엔에서 시민으로서의 용기를 잃었습니다. 그러한 용기의 쇠퇴는 지배 집단과 지식인 엘리트 사이에서 특히 눈에 띄며, 전체 사회에서 용기를 잃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용감한 개인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적 생활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46년 전 글임에도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북한 동포 노예 해방 자유 통일 문학, 한국의 솔제니친과 조지 오웰을 기대​

솔제니친은 또 '위대한 작가는 자신의 나라에서 제2의 정부다. 그러므로 어떤 정권도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UPI 기고에서 데이비드 맥스웰이 주장한 것처럼, 탈북 작가가 북한 체제 및 탈북 과정, 정착 과정 체험을 진솔하게 그린 문학이 탄생하면 북한 정권 역시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천부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체득해 각성할 심금을 울릴 탈북 작가 소설이 북한으로 전파되어 공유된다면, 이는 김씨 세습 왕조가 점거한 이래 38선 이북 땅에 존재한 적 없는 제2의 정부 탄생으로 이어질 훌륭한 베이스가 될 수 있다.

이는 분단 문학이 민족에 기여할 가장 위대한 성취가 될 것이다.

결국 위대한 문학은 위대한 양심의 산물이다.

칼보다 강한 펜의 힘 그중에서도 백미라 할 문학의 힘으로 어떻게 북한 주민을 구출할 것인가, 또 북한 인권에 너무도 무심한 남한 국민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가, 이 화두는 진실한 한국인 작가와 문학도라면 반드시 성찰해야 한다.

한반도의 솔제니친과 조지 오웰, 스타인벡 같은 작가가 속히 탄생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프리덤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