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님이 가시고 하나님이 오신다” 지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쓰러지자 북한 기독교인들 속에서 유행한 말이다. 북한에서 기독교는 순전히 김일성을 신격화하려다 보니 박해받을 수 밖에 없었던 종교다. 상대적으로 불교와 천도교 등은 기독교에 비해 덜 탄압받은 사실이 그걸 증명해 준다. 수령도 세습, 정권도 세습인 오늘 북한에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바로 얼마 전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총비서가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자’ 가운데 한 명으로 미국의 한 국제 기독교단체에 의해 선정됐다. 당연한 귀결이다. 이 지구상에서 북한 만큼 기독교가 탄압받는 나라는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어렵다. ‘국제기독연대’(International Christian Concern)가 지난 1일(현지시간) 발간한 연례 보고서 ‘올해의 기독교 박해자 2023’에서 김정은 총비서를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고 RFA(자유아시아방송)가 2일 전했다.
단체가 연례 보고서를 발표한 2021년 이래 3년 연속이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최악의 인물로 김정은 총비서 외에도 시진핑 중국 주석,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등 다섯 명이 지목됐다. 국제기독연대는 올해의 기독교 박해자 외에도 기독교 박해국에 북한 등 10개국, 박해 단체로는 6개 단체를 선정했다. 보고서는 현재 20만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북한 내 기독교인들이 모두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다가 적발될 경우, 고문이나 장기 강제 노동, 심지어 처형을 당한다며,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수만 명이 감옥에 수용돼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김정은 정권이 기독교를 미국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북한 정권과 신성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 외에 다른 충성은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김정은 총비서가 자신이 이끄는 체제의 조직적인 인권 유린에 대한 도덕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가 둘로 갈라서기 전까지 북한 땅은 말 그대로 ‘동양의 예루살렘’이었다. 1907년 1월 2일,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방위량(邦緯良)’이란 우리 이름을 가진 미국의 블레어(Blair) 선교사의 주관으로 성경 강의를 하는 사경회가 개최됐다. 그가 한국으로 들어와 언어 습득을 마치고 평양, 안주 등 5개군을 관할하는 본격적인 전도사역을 한지 6년 만의 일이었다. 매일 저녁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약 1천 명 정도였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하려면 짧게는 16㎞, 길면 160㎞ 이르는 아주 먼 거리를 걸어야 했기에 2주간 사경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아주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선교사가 전하는 새로운 성경 이야기와 서양 문물에 대한 정보를 듣기 위해 주민들은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한말 열강들과의 통상교섭이 시작된 이래 평양은 선교사들이 집중적으로 파견되면서 미국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었다. 특히 1891년 북장로회의 사무엘 마펫(Samuel A. Moffett)이 평양에 선교지부를 설립한 이후 평양과 그 일대인 관서지방은 미국 선교사들의 활동 근거지가 됐다. 미국 북장로회가 평양에서 활발히 선교를 하고 문화교류를 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 19세기 말 조선 서북부는 청·일 전쟁으로 인해 고아와 난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돌 볼 선교사역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평양선교부에서는 부족한 인원을 충원하기 위해 미국 북장로회 선교본부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했고, 이에 많은 선교사들이 평양과 관서지역으로 들어오게 됐다.
둘째,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방은 서울 중심의 양반사회와 달리 자립적인 중산층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 기독교 문화를 일찍 받아들이게 됐다. 평양 일대는 조선시대 내내 차별을 받아왔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랫동안 북방민족에 맞서 싸우며 상당히 호전적이었는데 문예를 중시하는 조선의 중앙세력과 맞지 않았다. 또한 조선 초 세조가 김종서를 제거한 이후 관서지역에 있는 그의 추종자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아예 배척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세조는 관서지방 무사들의 무과 응시를 금지 시켰고, 후대 국왕인 성종은 이러한 세조의 명을 아예 경국대전에 기록하게 했다. 한참 뒤에 정조가 관서지역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였지만, 정조의 죽음 이후 관서 지역의 차별은 더욱 심해져 결국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차별 때문에 평양 일대에서는 양반 사족의 형성이 약했고, 아무리 글 공부를 열심히 해 과거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관료로 출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반면, 현실과 유리된 유교적 지식이나 형식에 거리를 두며 자신의 생계를 직접 꾸려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상공업에 종사하며 대청(代淸)무역과 상업을 통해 부의 축적을 이루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겼다. 이러한 개방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기에 미국의 북장로교회가 기독교 신앙 전파를 했을 때 관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부흥으로 당시 백성들은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설립된 장로교회의 683개 중 관서지방에 있던 것이 362개로 전체의 과반수를 넘는다. 역사적 배경과 김일성 정권의 등장 등을 볼 때 왜 오늘날 북한 당국이 기독교를 왜 그토록 두려워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3대 세습의 북한에 다시 기독교 열풍이 불어닥치면 저 전체주의 체제는 마치 물먹은 담벽신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평양 정권의 기독교 탄압은 한계가 있다. 봉수교회 등 공식적인 3개 교회와 1개의 성당, 이 제도적 ‘백화점 교회’가 북한 복음화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평양정권에게 경고하건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김일성 왕조는 그만큼 붕괴를 재촉하게 될 것이다. 핵무기 몇 십개 만들고 인공위성 쏘아 올린다고 강성대국이 된 걸로 착각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을 보라. 왜 그들이 강대국이 되었는가. 바로 기독교 문명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충실한 기독교인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세운 반면, 북한은 내면은 친기독교인이면서 외면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두루마기를 걸친 김일성이 인민공화국을 세우다보니 오늘 ‘거지 공화국’이 되어 버렸다. 이제 북한은 인민의 마음에서 멀어진 수령님을 버리고 진정한 구세주 하나님을 섬김으로 백성도, 나라도 구원받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저작권자 ⓒ 프리덤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