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칼럼] 내각 총리를 개 취급하는 인사불성의 북한 통치자

- 안 찬 일(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편집국 승인 2023.08.28 15:24 | 최종 수정 2023.08.28 16:22 의견 0

안 찬 일정치학 박사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평양발 숙청 장마전선이 지금 북한 전역을 강타할 움직임이다. 주기를 두고 찾아오는 숙청의 히스테리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국경의 문을 다시 열면서 뭔가 인민들에게 공포심을 주는 피비린내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이 최근 침수 피해 지역을 찾은 자리에서 김덕훈 내각총리와 간부들을 “너절한” “건달뱅이” “틀려먹은 것들” 등 거친 표현으로 비난했다. 또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해 당적, 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려 내각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예고했다. 이는 식량난 등 열악한 경제상황의 화살을 이들에게 돌리고 김정은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바야흐로 평양발 숙청 장마 전선이 북한 전역을 목표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내각 총리는 북한 헌법에 보면 “내각 총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부인 내각을 대표한다.”이렇게 명문화되어 있다. 북한의 내각은 1948년 8월 제정된 인민민주주의 건국헌법에서 최고 집행기구로 규정되었다. 다시 1972년 12월 사회주의 헌법 제정으로 내각을 국가주석 직속 정무원으로 개편하고, 정무원 총리를 두었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후 1998년 9월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직이 폐지되면서 다시 내각 총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또 201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개정으로 최고인민회의 휴회 시 내각 구성원 임면권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국무위원회로 이관되었는 바, 국무위원회는 사실상 주석제의 부활이라고 보면 된다.

북한의 초대 총리는 김일성으로 초대부터 5대까지 그때는 총리 대신 내각 수상으로 불렀다. 김일성은 당과 정권기관, 행정부를 모두 대표해 1972년까지 내각 수상을 지내다 자기의 빨치산 후배 김 일에게 총리직을 물러주고 행정부에서 손을 뗐다. 북한 주민들은 이때부터 북한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왜냐면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가 1974년 공식적으로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김 일 뒤에는 역시 빨치산 출신 박성철, 그 뒤 이종옥부터 본격적인 경제관료가 임명되기 시작했고 강성산, 이근모, 연형묵, 홍성남, 박봉주, 김영일, 최영림, 김재룡, 김덕훈으로 이어져 왔다.

북한의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월 22일 김정은이 전날(21일) 평안남도 간석지 건설종합기업소 안석 간설치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바닷물에 제방이 파괴되면서 간석지 구역이 침수됐는데 김정은은 그 책임을 김덕훈 총리와 내각 간부들에게 물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최근 몇 년 어간에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 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고 그 결과 건달뱅이들의 무책임한 일본새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며 “내각총리의 무맥한 사업 태도와 비뚤어진 관점에도 단단히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김 총리가 대책답지 못한 대책을 보고해 놓고는 그나마 너절하게 조직한 사업마저도 료해(파악)해보면 피해 상황을 대하는 그의 해이성과 비적극성을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6호 태풍 '카눈' 피해지역인 강원도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을 방문해 복구 사업을 현지 지도했는데 이 자리에서도 김정은은 “나라의 경제사령부를 이끄는 총리답지 않고 인민 생활을 책임진 안주인답지 못한 사고와 행동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 내각총리의 무책임한 사업 태도와 사상 관점을 당적으로 똑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숙청의 길을 떠났을지도 모르는 김덕훈은 공장 지배인 출신으로 생산 현장 실무감각을 갖췄고 당과 내각에서 경제정책을 두루 총괄해본 경험으로 실무에 잔뼈가 굵은데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2020년 60세 젊은 나이에 총리에 오를 수 있었다. 총리에 임명된 김덕훈은 올해 들어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최용해를 제치고 김정은 다음으로 호명되는 등 위상이 높아졌다. 김정은의 측근임을 상징하는 ‘검은색 가죽 롱코트’를 입고 다니는 등 신임에 힘입어 임명 이후 김정은을 대신해 전국의 경제현장을 누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번 김정은의 호통으로 김덕훈은 더 이상 노동당의 권력무대에 서 있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김덕훈 총리뿐만 아니라 경제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예고됐다. 김정은은 “당 중앙의 호소에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들, 지적 저능아들,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책임 있는 기관과 당사자들을 색출해 당적, 법적으로 단단히 문책하고 엄격히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리 정황도 일부 포착됐다. 그는 “간석지 건설국장은 공급받은 연유를 떼 몰래 은닉해놓는 행위까지 했다는데 정말 틀려먹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아니 이런 일을 비리라고 표현할 때는 지나도 한 참 지난 걸 김정은은 아직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행정 간부들이 맡은 일을 못 해 군대가 투입되는 점에 대해서도 “정부 지도간부들과 지방 행정 경제일군들은 여전히 둔감해 있다. 이번에도 군대가 전적으로 달라붙어 해달라는 자세”라며 “뻔뻔스럽고 불손하기 그지없는 태도”라고 질타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김정은은 흰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팔을 걷어붙인 채 허벅지까지 이르는 물에 잠긴 논에 직접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통신은 제방이 터져 물이 넘쳐 흘러드는 사진도 여과 없이 보도했다.

간부들의 잘못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드러내 비난의 근거를 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정은이 노골적인 언어와 자세로 김덕훈 총리를 비롯한 간부들을 비판한 것은 식량난 등 열악한 경제상황의 화살을 이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김정은이 조용원·김재룡 당 비서, 강순남 국방상, 정경택 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정관 국방성 제1부상, 최근 복귀한 박정천 전 비서 등과 동행했다고 전했는데 김덕훈은 수행하지 못했다. 3년을 버티어온 김덕훈 총리를 내쫓고 또 다른 사람을 들여앉힌다고 북한 경제가 달라질 수는 없다.

얼마 전 북한 노동당 경제비서로 복귀한 79살의 오수용도 얼굴을 드러냈지만 북한 경제는 책임자 한 두명 바꾼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니다. 한 사람 바꾸는 것으로 해결할 길은 김정은이 사라지면 된다. 김정은 말고 어느 누구를 바꾸어도 북한은 퇴보를 멈출 수 없다. 먼저 사회주의를 버리고, 그 다음 김정은을 떠나보내면 북한 경제에는 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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