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찬 일 정치학 박사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1주일 동안 이전 사회주의 국가 몽골을 다녀왔다. 울란바토르 대통령궁 바로 옆에 자리잡은 몽골리아 국제포럼장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쟁쟁한 북한 전문가, 남북통일 전문가들을 만났다. 대통령궁을 사이에 두고 반대켠에는 북한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어 공연히 불안한 마음에 외출도 자제하였다. 그 전문가들 중에는 1974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해 조선어학부를 졸업한 몽골의 유명 인사 바산자브 락바 선생도 계셨다. 그의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는데 <다가오는 통일 KOREA>이다. 북한 쪽에서 청취한 6.25 남침전쟁의 생생한 증언들이 적혀 있어 한국전쟁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번에 러시아 전문가인 B교수님을 통해 북한이 1946년 10월 1일, 즉 김일성종합대학의 문을 열 때부터 핵개발을 시작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득문하였다. 개교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는 핵물리공학과가 설치되었는데 여기 교수들이 그 유명한 이승기 박사, 도상록 박사들이다. 이 박사는 1905년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현재 담양 생가에는 이 박사의 조카 부부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은 전남민속자료 제41호로 지정된 창평 장전 이씨 고택이기도 하다. 일본 교토제국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1939년 나일론에 이어서 세계 두 번째 화학섬유인 비날론(VINYLON)을 발명했다. 석유가 원료인 나일론과 달리 석탄을 주 재료로 삼은 합성섬유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교토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해방 직후 귀국한 그는 서울대 공대학장으로 일했다. 6ㆍ25 당시 월북해서 북한 영변 원자력발전소 초대 소장을 지내는 등 1996년 사망 때까지 북한 핵개발을 주도했다. 김일성은 늘 얼굴에 그늘이 있는 그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하자 북한의 007스파이로 불리는 이학문을 조장으로 하는 정찰부대를 보내 그의 어머니를 평양으로 월북시킬 정도였다. 북한 핵은 이 박사 등 1세대 월북 과학자들이 주도하고 소련 유학파 출신 2세대 과학자들의 합세로 개발됐다. 북한이 보유했다는 내폭형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에는 이 박사의 공헌이 지대했다.
2000년 통일부 보고서는 이 박사를 '북한의 핵과학 아버지'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묘사했다. 2003년 발간한 합동참모본부 보고서는 "이승기 화공학 박사가 북한이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내폭형 플루토늄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기록했다. 이 박사는 사회주의권의 노벨상이라 불린 레닌상을 받을 정도로 북한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함흥과학원 근처 고급빌라에서 살았으며 사망 후 남한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그뿐이 아니다. 장남인 이종과는 공훈과학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아들 두 명은 각각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 교수이고 딸은 김책공대 교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기 박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지낸 도상록 박사 역시 북한 핵무기 개발의 1등 공신이다. 도상록은 1903년 10월 13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부터 등산을 좋아하던 그는 우리나라의 명승지를 탐승하면서 기행문을 쓰고 친구들에게 피로하곤 하였다고 한다.
1919년에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도상록은 1925년에 일본의 제6고등학교를, 1930년에 도쿄제국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였다. 도상록의 수기에 의하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3. 1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되고 국내의 학교가 입학원서를 접수 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학 시기에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몇 해 휴학하여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고 한다. 한때 개성송도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45년 8월 만주의 신경공업대학 교수로 해방을 맞이한 도상록 박사는 곧 귀국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자리잡게 되었고 북한 물리학의 기반을 닦아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북한 인민들을 굶겨 죽이며 핵무기를 만들었다. 지금 김정은은 핵 개발을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 핵무력 국가가 김일성 때부터의 유업이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생각할 듯하다. 한국전쟁 때 미국에 당한 트라우마가 북한 핵 개발의 동기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북한이 일으킨 비극이다. 가만히 있는 북한을 미국이 침공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1950년대도 그랬고 지금은 훨씬 더 그렇다. 그렇다면 북한은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 핵을 개발한 셈이다. 북한 내 소요사태 발생에 대비해 핵을 개발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빌미로 외국군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발전시켜 주민 지지를 얻는 것이 핵 개발보다 우선돼야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가 아닌가.
시장경제를 선택한 몽골과 핵보유국가를 선택한 북한, 과연 누구의 선택이 현명한가? 굳이 대답을 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현재 울란바토르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사회주의 형체는 날이 갈수록 지워지고 있다. 거리는 승용차로 넘치고 몽골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학생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한국의 통일을 적극 지지하며 평양의 선택을 규탄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유학한 한반도 전문가가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위한 최선두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는 알아야 한다. 평양정권엔 미래가 없다. 늦었지만 평양도 울란바토르가 걷고 있는 시장경제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