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찬 일 정치학박사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 금강산 관광지구에 세워졌던 현대아산 소유의 해금강 호텔이 완전히 철거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금강산 현지를 방문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며 호텔 철거를 지시한 바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북한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누가 주도했는가. 바로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김정일은 누구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친 아닌가. 이제 김정은이 저 아버지를 부정하기 시작했단 말인가? 부정할바엔 그릇된 김정일의 다른 모든 것도 부정하면 절대 찬성이다. 김정은은 헌법에서 ‘선군사상’도 삭제하고 청산리 정신, 대안의 사업체계도 삭제했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문구 삭제로 끝나고 현실은 구태의 연속이니 환영할 일 하나도 없다.
지난 5월 5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민간 위성영상 업체 ‘플래닛 랩스’가 지난 3일 촬영한 북한 강원 통천항 위성사진에 해금강 호텔의 하층 지지대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앞서 하층 지지대 위 건물이 해체된 데 이어 최종 철거된 것이다. 통천항 수상에 떠 있던 하층 지지대는 지난 3월부터 크기가 줄어드는 모습이 위성사진에 잇따라 포착됐다. 앞서 금강산 관광지구가 위치한 강원 고성항에서 지난해 12월 통천항으로 옮겨져 해체 작업이 이뤄져 왔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해금강 호텔은 우리 측 현대아산 소유로, 금강산을 방문한 남한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한 수상 호텔이다. 발 빠르게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분들은 여기서 숙식하며 통일의 꿈을 꾸던 희망의 장소이다. 특히 실향민들은 오매에도 그리던 북한 땅을 밟으며 이산의 한을 달래고 가족상봉의 그날을 꿈속에서나마 그림으로 그려냈으니 이 장소야 말로 수상의 ‘통일나라’였다.
지난 2008년 박왕자 씨 저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이 시설은 10년 넘게 방치돼 왔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0월 금강산을 시찰한 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여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되여 흠이 남았다”며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되였다”고 비판했다. 남측과 협력해 금강산 관광 사업을 추진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우리는 북한에서 3대 세습이 이어지고 오늘 또다시 4대 세습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처럼 자기 선대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물론 김정은이 가리키는 선임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대남정책의 책임자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금강산 관광사업이 김정일의 작품이란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 권력내부의 갈등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하고 있다. 김정은의 지시 후 북한은 지난해 3월 해금강 호텔 철거 작업을 일방적으로 시작했다. 3년을 버티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철거에 달라붙은 것이다. 금강산 관광지구 내 다른 남측 자산도 지난해 대부분 해체됐다. 작년 4월엔 한국의 리조트 기업 아난티가 운영하던 금강산 골프장의 8개 숙소동이 철거됐다. 문화회관 건물과 금강산 온정각, 고성항 횟집 등 한국 소유 건물이 해체돼 현재 이들 부지엔 콘크리트 잔해만이 남아있다. 정부는 우리 측 자산에 대한 일방적인 철거를 중단할 것을 계속 요청하고 있으나 북한은 무응답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일방적인 우리 기업 자산 철거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국내 법원 등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이를 강제 집행할 방법이 없어 제재 실효성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남측의 재산인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도용과 훼손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개성공단에는 남한 125개 기업이 입주하여 북한 근로자 5만 3,947명, 남한 근로자 800~1,000명, 남한의 원부자재 하청 협력업체 3,800개 업체로 총 8만 명이 섬유와 의류, 가방, 완구, 전자 등을 생산하여 연간 생산액은 3,955만 달러였다. 그러나 2016년 북한의 광명성 발사 이후 개성공단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수까지 마감된 상황에서 또 어떤 돌파구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지 암담하기만 하다.
우리는 김정은의 선대 수령 비판을 환영한다. 물론 과거 김정일도 몇 차례 김일성을 공개 비판했으나 북한의 언론은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선대 수령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것으로 개혁과 개방의 기발을 들었다. 선대를 비판하지 않고서는 미래로 갈 수 없는 것이 세습정치의 한계요, 전체주의 체제의 아킬레스건이다. 김정은은 2018년 6월 싱가폴 북미회담 실패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실패 후 귀국하여 금강산을 찾아가 화풀이를 하는 식으로 선대 수령의 정책을 질타하였다. 그러나 겨우 화두를 터치했을 뿐이다. 선대수령이 남긴 구체제의 구악은 북한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다. 그 모든 구악의 사슬을 끊어버리지 않는 한 북한은 ‘벼랑끝으로의 질주’를 절대로 멈출 수 없다.◘
안 찬 일 정치학박사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