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회의장서 발언하는 이성의 이사장.유엔 웹TV 화면캡처
이성의(77)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1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식회의에서 “한국전쟁 당시 납북인사 문제는 북한에 의한 강제실종의 시초”라며 “이 문제가 해결됐다면 일본, 태국, 루마니아 등에서의 후속 납치도 방지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 안보리 ‘무력분쟁 시 민간인 보호’ 회의 브리퍼로 참석한 뒤 국내 기간 뉴스 통신사인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된 변호사 이종령(1909년생)의 막내딸인 그는, 부친이 납북될 당시 18개월이었다. 그는 “북한은 명백한 증거에도 납치를 부인한다”며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나 특별재판소 설립을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전쟁 납북자는 약 9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이사장은 1951년 8월 납북인사 배우자들이 ‘6·25사변피랍치인사가족회’를 결성해 구출 활동과 명부 제작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960년대 반공 정서 강화로 납북자 문제는 40년간 사회적 금기였다.
그는 “북한에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절이었다”며,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가족들이 활동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2000년 11월, 납북인사 자녀 세대가 협의회를 재결성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이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당시 통일부는 월북과 납북을 구분할 수 없다며 단체 허가를 꺼렸다”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정부의 남북 화해 기조로 ‘납북자’라는 단어 사용조차 제한되던 시기였다.
협의회는 자체적으로 증거를 수집, 1952년 정부가 휴전회담을 위해 작성한 납북자 명부(8만2천959명)를 중앙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이 이사장은 “공보처 통계국 직원이 전쟁 중 가가호호 방문해 명부를 만들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강릉대 김명호 교수의 도움으로 1950년 서울 명부(2천438명), 1954년 내무부 명부(1만7천940명)를 통합, 약 9만 명의 납북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 데이터는 납북 규모와 피해 실태를 입증하는 핵심 자료다.
이 이사장은 “북한의 강제실종은 한국전쟁에서 시작돼 지속됐다”며 “당시 문제가 해결됐다면 전후 납치가 줄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규명했음에도 후속 조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ICC 제소나 특별재판소가 필요하다”며 “북한이 납북자 생사를 확인하고 유해를 송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줬다”며 “차기 정부도 이 관심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안보리 회의는 2019년 결의 2474호(무력분쟁 실종자 수색·유해 반환 촉구)의 첫 이행 점검으로, 미국·영국·프랑스 요청으로 열렸다.
쿠웨이트가 이라크 침공 경험을 바탕으로 주도한 이 결의는 실종자 가족의 알 권리를 강조한다.
같은 회의에서 하마스 공격(2023년 10월)으로 실종된 이스라엘군 이타이 첸의 부친 루비 첸도 “하마스의 인질 심리전”을 비난하며 납북자 문제와의 공통점을 밝혔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75년 넘게 납북자와 인질 가족의 고통은 같다”며 “북한의 다국적 납치는 긴급 문제”라고 강조했다.
도로시 셰이 미국대사 대행도 “하마스와 북한은 인질과 납북자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회의는 납북 문제를 국제사회에 환기하며 북한 책임 추궁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