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칼럼] ‘큰 두 적’과 ‘작은 적’을 바꾸려는 평양정권의 음모?
- 안 찬 일(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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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6 10:17 | 최종 수정 2024.02.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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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는 ‘외부의 적’이 없으면 존재가 불가능한 나라다. 문을 걸어 잠그고 인민들의 귀와 눈을 가리우고 생존하기를 80여 년, 이제 그 생존 방식이 가공할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대외의 ‘적국’을 바꾸려는 평양정권의 움직임이 점입가경이다. 즉 김정은 정권은 큰 나라 미국과 일본 대신 남조선, 즉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유일한 적국으로 삼으려고 발광하고 있다. 적국을 교체하여 작은 적국을 상대하겠다는 음모는 지혜로우나 동족을 제1의 주적으로 정한 평양 정권의 음모는 치욕스러움의 절정 아닌가. 이 음모론의 발상 중 평양은 형제의 나라 쿠바를 잃어버렸다. 적국 교체의 핵심은 이른바 두 개 국가론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면 북한은 왜 ‘두 개 국가론’과 강경한 전쟁 담론을 쏟아내고 있을까? 당 전원회의(8기 9차 전원회의)에 이어 최고인민회의(1월 15일)에서 헌법까지 개정해서 민족과 통일이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선대 수령들까지 거부하며 조국통일 3대헌장을 폭파시켜 버렸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지그프리드 해커는 김정은 정권이 전쟁을 결심했고 한반도 정세가 한국 전쟁 이후 가장 위험한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좀 과장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북한의 호전적인 담론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새롭지 않다는 의견도 있고, 미국 대선을 앞둔 협상력 제고의 목적이라는 전통적 의견도 있다. 트럼프 당선을 갈구하는 김정은의 ‘기도’는 서울에까지 들려오고 있다.
북한의 호전적 담론과 두 개 국가의 제도화는 새롭지 않으나, 과거와 달라진 점도 분명하다. 연속성과 차별성을 명확히 해야 대응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세는 한쪽의 일방적 의지가 아니라 상호 관계에 따라 변하고, 정해진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정세관리 노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현재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한미 양국의 핵 보복 능력도 존재하기에 한반도에서 상호 확증 파괴(MAD: Mutual Assurance Destruction)의 억지력이 작동하고 있다.
당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의 연설도 전쟁을 선제적이 아니라, 공격받을 경우의 대응 차원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에서 전면전쟁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발적 충돌에 의한 제한전쟁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김정은은 서해의 해상경계선을 거침없이 ‘해상국경선’이라고 일갈하고 있지 않는가. 일반적으로 핵무기를 통한 상호 억지는 전면전의 가능성을 줄이지만, 인도-파키스탄의 사례에서 확인되듯이 오히려 국지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서로 핵을 보유하는 상황에서 제한전쟁이 일어나도 상대가 전면전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한전쟁의 수준과 제한전쟁에서 전면전쟁으로의 전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존재한다. 첫째는 한반도 긴장 고조의 경제적 영향이다. 현재 장기적인 남북 관계 악화와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경제의 거시경제환경이 불리하고, 위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안보 불안이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장기적인 위기의 피해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더 크다는 점에서 정세를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한반도 정세에 관한 한미 양국의 인식 차이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중동 전선이 넓어지고, 대만해협의 긴장도 유지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한반도 정세의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전시 작전 지휘권을 행사하는 미국이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정세관리에 긍정적이다. 셋째,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의 차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협력이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이어 극동에서 미국과의 대결을 피할 생각이 없다.
북한은 러시아에 동조하면서, 첨단 군사 분야의 기술을 이전받고자 한다. 상반기로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중국의 입장은 다르다. 중국은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러시아와 달리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있으며,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과거 6.25 당시 평양 정권은 전쟁 결심은 스탈린에게서 받았지만 전쟁관리와 종결은 중국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현재도 북한과 러시아는 무기를 주고 받고 있지만 북한 안보의 키는 북경이 쥐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석이다. 김정은이 큰 적국 미국과 일본에 다가서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우리 통일부 장관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 워싱턴과 도쿄에 갈 생각 말라고 엄포를 놓고 있지 않는가. 대한민국을 무시하고 북한 정권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안 찬 일(사)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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