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과 그 전후 시기 남북대화 사료(史料)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 다수가 '전○○'으로 표기돼 있다.
28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대화 사료집'(9·10권)에 실린 북한 발표문과 보도문, 회의록 발언에서 '전두환' 표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9권 말미에 수록된 북한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의 1980년 11월 11일자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 '전두환 군사파쑈독재'라는 표현이 유일하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은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조치 후 각종 대남 성명과 관영매체 보도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실명 비난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북한 당국은 전 전 대통령을 이름만으로 부르거나 이름 뒤에 '역도', '역적', '군사깡패', '악당', '괴뢰', '살인악당', '인간백정', '팟쇼살인마', '놈' 같은 극언·비속어를 붙여 부르기 일쑤였고 '살인귀', '살인광'에 비유하곤 했다.
김웅희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은 "대통령을 이름만으로 호칭한다는 것은 군사정권 당시 분위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뿐 아니라 남북회담 사료 실무자로서는 극언을 동원한 북한의 실명 비난에 대통령의 이름을 그대로 두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같은 문건 내에서도 '이승만', '박정희', '박정희 독재자'는 ○○ 표기 없이 이름이 그대로 쓰였고,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9년 7월 대통령을 비난하는 노동신문 논평의 '박정희' 표기도 정확하게 사료에 수록됐다.
역사 편찬의 초고가 되는 사료조차 있는 그대로 작성하지 못한 것은 신군부 통치의 서슬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남북 교섭과 사료 작성 등 남북회담 사무는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 국가안전기획부 소관이었다. 7·4 남북공동성명 주역인 이후락 부장 이래 중정이 대북 교섭을 주도했다. 통일부 전신인 국토통일원은 1970년대까지 대북 창구로서의 존재감이 없었다.
대북 교섭업무 현장에 국토통일원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9년 3월 28일 남북 당국간 실무대표 접촉을 성사하기 위해 판문점에 파견된 실무대표단에 동훈 차관이 수석대표로 지명되면서다.
그러나 당시 실무대표 접촉이 성사되지는 못했고, 국토통일원 당국자로서는 정종식 정책기획실장이 1980년 2월 열린 남북 총리 간 회담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에서 처음으로 북측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해 10월 국토통일원에 남북대화사무국을 설치하는 직제개편이 이뤄져 국토통일원이 중정으로부터 남북대화 사무를 넘겨받아 대북 협상 창구의 역할을 맡게 됐다. 올해 통일부의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조직이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폐합되며 조직 명칭에서 '대화'와 '회담' 표현도 사라졌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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