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 사흘 뒤 북한군이 대량학살 저지른 서울대병원 건물.(사진=연합뉴스)

◆ 생지옥으로 변한 서울대병원

1950년 6월 28일 오전 9시, 서울 대학로 낙산에서 굉음이 울렸다.

북한 ‘류경수 탱크부대’가 미아리고개 국군 방어선을 뚫고 혜화동으로 진격하며 쏜 총포 소리였다.

서울대병원은 순식간에 생지옥이 됐다.

인민군은 병동을 돌며 입원 중인 국군 장병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민간인 환자와 어린이까지 인민군 부상병 치료를 우선한다며 무차별 살해했다.

총 쏘기가 번거롭자 환자들을 치과대학 뒤 석탄저장소로 끌고 가 5m 높이 석탄 더미에 산채로 파묻었다.

병원 후문 영안실 언덕에는 시신이 쌓였고, 장맛비에 불은 시체에서 악취가 진동하자 인민군은 창경궁 앞과 혜화동 로터리에 시체를 쌓아 불태웠다.

◆ 학살을 도운 내부 배신자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서울대 의료진과 직원들은 인민군을 병원으로 안내한 이들이 월북한 전직 서울대 의대 출신 군의관들이었다고 증언했다.

다음 날 병원 정문 앞에선 남로당 당원으로 암약하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어깨동무하며 승리를 외쳤다.

이들은 동료 중 반공 인사를 골라 반동분자로 몰아 공개 처형했다.

인민군은 석 달 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자 의료진을 북한으로 납치하고, 퇴각 전 환자 명단과 진료기록을 불태워 범죄를 은폐했다.

이는 남침 전 치밀히 계획된 대량학살의 증거로 남았다.

서울대병원에 있는 '北 학살희생자' 추념 현충탑.(사진=연합뉴스)


◆ 75년 만의 진실 규명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6·25 남침 후 북한의 첫 전쟁범죄로 꼽히는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을 집단 학살로 규정할지 조만간 전체 회의에서 판단한다.

재적 과반 찬성 시 사건 성격과 피해 규모가 확정되며, 정부의 공식 사과, 피해 구제, 역사 교육 반영 등이 검토된다.

사건 75년, 진실화해위 출범(2005년) 20년 만의 결정이다.

그간 공식 추모는 1963년 한국일보사의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건립이 전부였고, 유관 부처의 소극적 태도로 역사에서 묻혀왔다.

◆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의 교훈

뒤늦은 진상 규명은 그날의 비극을 후세에 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오늘의 서울대 의대생과 의료진은 현충탑을 찾아 그 비극을 되새겨야 한다.

비석에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산화한 국군 장병과 환자를 지키다 숨진 의료진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넋은 부를 길 없으나 길게 빛나고 불멸의 숲속에 편히 쉬어야 하리. 겨레여, 다시는 이 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게 하라’는 글귀는 오늘의 교훈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