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교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해 10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지 1년 1개월 만이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난 1월부터 10개월 동안 열 차례 열린 공판에서 이 대표 측과 검찰은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였다.
이 사건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대표는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을 취재하던 최철호 KBS PD와 짜고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에게 검사를 사칭했고, 이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른바 '검사 사칭' 사건이다.
16년이 지난 2018년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검찰은 이 발언과 '친형 강제 입원' 발언 등을 포함해 이 대표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 혐의로 그해 12월 11일 재판에 넘겼다.
이 대표는 김 전 시장의 비서 출신 김진성 씨에게 2018년 12월 22~24일 전화를 걸어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김씨는 2019년 2월 법정에서 "김 전 시장이 KBS 측과 협의로 이 대표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결국 이 대표는 2020년 대법원의 판결로 무죄가 확정됐다.
그렇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던 사건이 다시 부각된 것은 지난해 이 대표의 백현동 특혜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이 대표와 김씨 간 통화 녹음파일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김씨가 2018년 12월부터 녹음해둔 이 대표와의 통화 녹음파일에는 과거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가 김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자신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는 등의 증언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녹음파일에는 "모두가 나를 잡아넣는데 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측면들의 얘기가 오간 걸로" "그때 'KBS 측하고 성남시 측하고 그런 식의 협의나 논의가 많았다,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 정도를 누군가 얘기를 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KBS 측과 김 전 시장 간) 교감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면 딱 제일 좋죠" 등 이 대표의 음성이 담겨있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이 대표가 김씨에게 위증을 교사했다고 보고, 지난해 3월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하지만 영장 청구 전까지 위증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김씨가 기각 후 조사에서 "현직 도지사 요구를 차마 거부하기 어려워 위증했다"고 자백하면서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수사를 이어가던 검찰은 같은 해 9월 18일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위증교사 혐의도 포함했다.
같은 달 21일 국회에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졌고, 가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구속 갈림길에 선 이 대표는 닷새 뒤인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고, 이튿날 새벽 법원은 이 대표의 영장을 기각했다.
다만 당시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에서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16일 위증교사 혐의로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사건은 앞서 기소된 이 대표의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 사건을 심리 중인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에 배당됐고, 이 대표 측은 재판부에 위증교사 사건도 함께 병합해서 심리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장동 사건과 관련 없고 쟁점도 다르다"며 "사건 분량에 비춰볼 때 따로 분리해서 심리해도 된다는 의견"이라며 앞선 사건과 별도로 재판을 진행했다.
첫 공판은 올해 1월 22일 열렸다. 이 대표 측은 이날 공판에서 "검찰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만 따 공소장에 넣었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반면 김씨는 지난 2월 26일 공판에서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부인에 대해 '꼬리 자르기'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김씨 요구에 따라 두 사람의 변론을 분리 진행했다. 김 씨가 이 대표와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하자 법정 내부에는 두 사람 사이 가림막이 설치되기도 했다.
위증교사 재판에는 '검사 사칭' 사건의 당사자인 최 PD를 비롯해 KBS 측 인사 다수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당시 이 대표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야합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총 30여분가량인 두 사람 간 통화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재생되기도 했다.
검찰은 녹음 파일이 위증교사의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대표 측은 검찰이 공개한 내용은 녹음 파일을 부분 발췌한 '짜깁기'로 전체를 들어보면 전혀 다른 맥락이라고 맞섰다.
이 대표가 김 씨에게 "그냥 있는 대로 (말해달라)." "한번 생각을 되살려 봐주시고"라고 하는 등 기억을 환기시키는 차원의 대화였다는 것이다.
지난 9월 30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 대표에게 징역 3년을, 김씨에게는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이날 김씨에게는 일부 자신의 기억과 다른 증언을 했다며 위증을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지만, 이 대표에게는 김씨에게 기억에 반하는 증언을 하도록 교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위증교사의 경우 상대방이 위증을 하도록 마음먹게 만드는 고의적 행위가 필요한데, 이 대표에게 김진성으로 하여금 위증하도록 결의하게 하려는 고의, 즉 교사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다음은 이 대표 '검사사칭 사건'부터 위증교사 혐의 수사·재판 일지이다.
◆ 2002년
▷ 5월 10일 = 이재명, 최철호 당시 KBS PD와 수원지검 서모 검사 사칭…최철호-김병량 통화.
▷ 5월 18일 = KBS 추적 60분 '분당 백궁·정자지구 파크뷰 용도변경 및 특혜분양 사건' 방영…김병량 녹음테이프 일부 내용 공개.
▷ 7월 4일 = 수원지검 성남지청, 공무원자격 사칭 혐의 등으로 이재명 구속 기소.
▷ 7월 9일 = 이재명 보석 석방.
▷ 11월 13일 = 수원지법 성남지원, 이재명에 벌금 250만원 선고.
◆ 2003년
▷ 7월 1일 = 서울고법, 이재명 공무원자격 사칭 혐의 항소심서 벌금 150만원 선고.
◆ 2004년
▷ 12월 24일 = 대법원, 이재명 공무원자격 사칭 혐의 유죄 판결 확정.
▷ 2015년
▲ 2월 25일 = 김병량 전 성남시장 사망.
◆ 2018년
▷ 5월 29일 = 2018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 KBS 초청 토론회…이재명, '검사 사칭' 질문에 "피디가 사칭하는 데 누명 썼다·"보복당했다고 생각한다" 답변.
▷ 7월 1일 = 이재명 경기도지사 취임.
▷ 10월 29일 = 경기 분당경찰서, 이재명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
▷ 11월 1일 = 경기 분당경찰서, 이재명 검찰 송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 혐의.
▷ 11월 24일 = 수원지검 성남지청, 이재명 소환 조사.
▷ 12월 11일 = 수원지검 성남지청,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 혐의로 이재명 불구속 기소.
▷ 12월 22일·24일 = 이재명, 김진성에게 전화해 증언 부탁…"내가 타깃이었던 사건이었던 점을 얘기해주면 도움 될 것"·"그런 얘기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
◆ 2019년
▷ 1월 10일 =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정식 공판 시작.
▷ 1월 17일 = 이재명,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김진성에 대한 증인신청서 제출.
▷ 1월 24일 = 김진성, 증인신문기일 당일 무단 불출석.
▷ 2월 14일 = 김진성, 이재명 측 증인으로 출석…"이재명이 누명을 썼다" 취지로 증언.
▷ 4월 25일 = 수원지검 성남지청, 결심공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벌금 600만원 구형…'친형 강제입원'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에는 징역 1년6개월 구형.
▷ 5월 16일 = 수원지법 성남지원, 이재명에 무죄 선고.
▷ 7월 10일 = 수원고법, 이재명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
▷ 9월 6일 = 수원고법, 이재명에 항소심서 벌금 300만원 선고
◆ 2020년
▷ 6월 18일 = 대법원 전원합의체,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 첫 심리 및 심리 마무리.
▷ 7월 16일 = 대법원,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 9월 21일 = 수원고법, 파기환송심 첫 재판.
▷ 10월 16일 = 수원고법, 파기환송심 무죄 선고.
▷ 10월 23일 = 이재명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 무죄 선고 최종 확정.
◆ 2023년
▷ 3월 23일 = 서울중앙지검, 김진성에 위증 및 '백현동 비리 관련'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 청구.
▷ 3월 27일 = 서울중앙지법, 김진성 구속영장 기각.
▷ 8월 17일 = 서울중앙지검, '위증교사 의혹' 및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 이재명 소환조사.
▷ 9월 18일 = 서울중앙지검, '백현동 개발비리·대북송금·위증교사 의혹' 이재명 구속영장 청구
▷ 9월 21일 = 국회,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 9월 26일 = 서울중앙지법, 이재명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 9월 27일 = 서울중앙지법,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여"
▷ 10월 16일 = 서울중앙지검, 이재명·김진성 각각 위증교사 ·위증 혐의 기소.
▷ 10월 17일 = 서울중앙지법, 이재명 위증교사 혐의 사건 형사합의33부에 배당.
▷ 11월 13일 = 서울중앙지법, 위증교사 재판과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 재판 별도 심리 결정.
◆ 2024년
▷ 1월 22일 = 서울중앙지법, 위증교사 혐의 첫 공판…이재명 혐의 부인·김진성 혐의 모두 인정.
▷ 5월 27일 = 최철호, 증인신문서 "이재명의 '누명' 주장은 거짓말" 반박.
▷ 9월 30일 = 검찰, '위증교사 혐의' 이재명에 징역 3년 구형…김진성은 징역 10개월 구형.
▷ 11월 25일 = 서울중앙지법, 이재명에 무죄 선고…김진성은 벌금 500만원 선고.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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