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이라도 北가족 재회하길"…'무연고' 탈북민 봉안현장을 가다

- 서울 승화원서 공영장례후 인근 추모관에…논산에도 봉안 공간 운영

고철혁 승인 2024.10.27 19:10 의견 0
북의 가족이 찾아와 모셔갈 때를 기다리며
통일부 관계자가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 예원추모관에 마련된 북한이탈주민 유골 봉안실을 찾아 추모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봉안실 입구에 부착한 '추념의 글'에는 "비록 지금은 연고자가 없어 여기에 모시지만 언젠가 북한에 있는 가족이 찾아와 모셔갈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기재돼 있다.연합뉴스


"고인의 아드님 부부가 차로 오시는 중인데, 근처에 사고가 있어서 승화원 오는 길이 너무 막힌다고…먼저 시작하시라고 하네요."

서울 북부하나센터 직원은 전화를 끊고 서울시 무연고자 공영장례 절차를 인도하는 봉사자(활동가)를 미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소재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북한이탈주민 송모(향년 77) 씨의 공영장례가 소박하게 거행됐다. 공영장례는 가족 등 연고자가 없거나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했을 때 자치단체가 진행하는 장례 절차다.

제단 위에는 위패가 배치되고, 그 위로 연분홍 저고리로 곱게 차린 송씨의 영정이 놓였다.

함경북도 출신인 송씨는 제3국을 경유해 지난 2007년 단신으로 입국했다. 이후 며느리와 손자도 탈북에 성공했지만 아들은 북한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탈북한 며느리·손자와는 국내에서 연락이 끊겼다.

60대에 입국한 송씨는 국내에서 가까워진 남성과 서로를 의탁하며 해로했다.

고령인 데다 각자의 자녀가 남북에 있기에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날 장례식에 오기로 한 '아드님 부부'도 송씨가 생전 아들·며느리 사이로 지냈지만 법적으로는 남남이었다. 송씨는 탈북을 겪으면서 남과 북에 모두 가족이 있으면서도 법적으로는 '무연고자'가 된 것이다.

최근 건강이 나빠진 송씨는 지난 1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전날까지도 대화를 나눴던 요양보호사가 송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자택을 찾았다가 그가 숨진 것을 발견했다. 서울시의 무연고자 공영장례로 행정절차가 결정되고 장례식까지 보름이 걸렸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으신 고인을 추모합니다"
황유상 통일부 안전지원과장이 지난 16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된 북한이탈주민 송모씨의 공영장례에서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연합뉴스


무연고 탈북민의 장례 진행은 다른 서울시 무연고자 때와는 조금 다르다. 제단에 송씨의 영정이 모셔졌고, 옆에는 통일부 장관의 조기가 놓였다. 통일부 안전지원과장이 상장을 매고 상주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 탈북민 지원기관인 서울시 북부하나센터 직원 2명도 제단에 헌화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황유상 안전지원과장은 이 업무를 맡은 2020년 이래 전국 어디서든, 휴일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무연고 탈북민의 장례에 달려가 상주로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고 한다. 이날도 황 과장은 준비해온 조사를 낭독했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으셔서 많이 노력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간절하게 소망하셨지만 못 다 이룬 고인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치겠습니다."

주무부처의 과장이 탈북민의 장례 현장을 챙기니 담당 하나센터에서도 자연스럽게 참석하는 관행이 자리를 잡았다. 생전에 신변보호를 담당한 경찰관이 조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발인제가 끝나도 아들 부부는 도착하지 못했다. 시간을 끌어주던 봉사자가 조심스럽게 "더는 기다릴 수가 없으니 운구해서 화장로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며 일행을 안내했다.

관이 화장로 문 앞까지 다다랐을 때 아들 부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초조하게 통화를 계속하던 북부하나센터 직원은 "운구 못하시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정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리창 건너 화장로로 들어가는 관을 본 며느리는 "손자를 그렇게나 예뻐하셨는데"라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공영장례 지원 활동가는 다시 제단을 정돈,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아들 부부가 제를 올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족 대기실에서 만난 며느리는 붉어진 눈으로 "그저 화장로 앞에서 간단히 묵념만 할 줄 알았는데, 영정도 번듯하게 챙겨주시고 이렇게 제도 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조금은 마음이 놓인 것도 같다"고 했다.

박하영 북부하나센터 부센터장은 "유품이나 지인 도움으로 사진을 구해 영정을 마련한다"며 "아무리 해도 사진을 못 구하면 탈북 직후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 입소할 때 촬영한 사진을 통일부에서 받아서라도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탈북민의 '마지막 여정'
통일부 관계자 등이 지난 16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북한이탈주민 송모씨의 영정을 앞세우고 화장로로 운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송씨의 유골은 승화원 인근에 있는 예원추모관 1층에 북한이탈주민을 위해 마련된 별도 공간(미소1실)에 봉안됐다. 서울시가 무연고자 유골을 장례 후 바로 산골하거나 '무연고 추모의 집'에 5년간 봉안하는 것과 차이점이다.

장례 이튿날 예원추모관 탈북민 봉안실에는 송씨의 유골함 옆에 사진이 함께 놓였다.

정부 지원으로 무연고 북한이탈주민의 유골을 봉안하는 곳은 예원추모관과 논산의 무궁화추모공원까지 두 곳이다. 현재까지 이 두 시설에 봉안된 탈북민 유골은 약 90기다.

황 과장은 "언젠가 북에 있는 가족이 찾아왔을 때 유해라도 재회할 수 있도록 작은 배려를 하는 것"이라며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찾아온 분들에게 정부가 그 정도는 해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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