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 장관과 면담하는 안덕근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있다.연합뉴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미국 핵심 고위 당국자들을 두루 접촉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정지로 한미 정상 외교가 부재한 가운데 안 장관의 방미를 통해 한미 양국이 처음으로 통상 분야 최고위급 협의를 진행해 양국의 구체적인 입장을 확인하고 향후 협력 동력을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부는 안 장관이 지난달 26∼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면담했다고 1일 밝혔다.

미 '에너지차르'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면담하는 안덕근 장관.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안 장관은 우선 지난 27일 직접 카운터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면담에서 조선·첨단산업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하고, 미국 정부의 관세 조치 계획에 대한 우리 기업의 우려 사항을 전달한 뒤 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한미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측 간 관세 조치 관련 논의를 위한 실무 협의체와 한미 조선 협력 강화를 위한 실무 협의체를 각각 개설해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안 장관은 28일 워싱턴DC 인근 식당에서 개최한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관세 조치와 관련해 우리 기업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며 면제를 요청했다"며 "실무 협의체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우선 관세 면제를 목표로 하되 만약 미국이 한국에도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면 최소한 다른 국가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미국 행정부는 4월 1일까지 자국 무역 정책을 전반적으로 검토 중인 상황이다.

러트닉 장관은 자국 무역적자 해소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와 관련한 한국의 협력을 희망하는 뜻을 피력하면서도 대한국 관세 계획까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와 대화하는 안덕근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미국무역대표부(USTR)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안 장관은 미국산 가스·원유 등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통해 한국이 대미 무역수지 균형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뜻을 전달하면서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관심사에 호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대미 무역 흑자 비중이 가장 큰 자동차의 경우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짓는 공장이 다음 달 말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미국 내 생산이 늘면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양측은 조선 협력에 대해 상호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으며 미국 측은 협력을 최대한 빨리 추진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한미 조선 협력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 설명했으며, 미국이 조선 협력을 어렵게 하는 법·제도를 바꾸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니 그전에 양국이 유연성을 발휘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안 장관은 이날 면담에서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보조금 등 한국 기업을 위한 안정적인 현지 투자 환경이 뒷받침돼야 더욱 많은 대미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 미국무역대표부 대표 면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미국무역대표부(USTR)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안 장관은 28일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차르'인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내무부 장관 겸임)과 그리어 USTR 대표와 각각 만나 상호 호혜적인 한미 에너지 및 통상 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했다.

버검 위원장은 한미일 에너지 협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에너지 협력은 긴 호흡을 갖고 안정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어 한일 관계 안정화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안 장관을 만난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이 한국 정치 상황에 우려를 표하거나 관심을 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 정부는 미국이 비관세 장벽이라고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는 국내 규제를 검토해 개선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데 안 장관은 정부의 이런 계획을 미국 측과 면담에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안 장관은 방미 기간 미국 조선업 강화를 위한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을 발의한 마크 켈리 상원의원(민주당·애리조나), 헤리티지 재단 케빈 로버츠 회장,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회장,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아담 포젠 소장 등을 만나 한미 정부 협력에 가교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안 장관의 이번 방미를 통해 한국이 미국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산업 협력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미국의 대한국 정책이 아직 완전히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속 논의 플랫폼을 만드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호 관세 도입 등 트럼프 신정부의 무역 정책이 구체화하기 전 우리 측 입장을 최대한 개진해 정책에 반영되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 안 장관의 조기 방미를 추진했다.

다만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또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알 수 없는 만큼 당장 성급하게 협상을 시도하기보다는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장기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미국의 산업·통상 정책이 잇달아 발표되는 상황에서 종합적인 검토와 전략 없이 대응하게 된다면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최적의 대응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