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하원에서 608억 달러(약 84조원) 규모의 대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반년간의 표류 끝에 처리됨에 따라 2년 2개월 가까운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항전에 상당한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크라이나 지원안은 이스라엘 지원안과 대만 지원안, 이른바 '틱톡 강제매각 및 대이란 제재 강화 법안' 등 이날 의회를 통과한 총액 950억 달러(약 131조원) 규모의 4개 대외 안보 법안 중 액수 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 의회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을 위해 예산 1천130억 달러(약 156조원)를 책정했는데, 이번에 하원을 통과한 대우크라이나 지원안 규모는 그 절반을 약간 넘는다.
이르면 23일 이뤄질 상원 표결이 남아있지만, 상원은 이미 지난 2월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 지원을 하나로 묶은 '패키지 안보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어, 하원에서 송부된 이번 법안들을 처리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608억 달러 규모의 대우크라이나 지원안이 상원 가결과 대통령 서명을 거쳐 통과되면 미국은 우선 유럽의 미군기지 등에 있는 무기 재고를 철도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로 신속히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번 예산안에 따르면 우선 미군 무기고에 있는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뒤 608억 달러 가운데 230억 달러를 활용해 미군 무기고를 다시 채우게 된다.
미국이 우선해 지원할 무기는 러시아 미사일과 드론 공세를 차단하는 대공방어망과 관련한 무기·장비와 최근 우크라이나가 심각한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포탄, 특히 155mm 포탄이 될 전망이다.
대규모 포탄 지원을 받으면 우크라이나는 작년 하반기부터 북한으로부터 탄약과 미사일을 대거 공급받은 러시아와의 화력 격차를 일부나마 좁힐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법안에는 강제력은 없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지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미국 매체들은 전했다.
따라서 미국이 앞으로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깊숙한 곳까지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300km의 신형 에이태큼스 지대지 미사일을 지원하게 될지도 관심을 끈다.
미국은 러시아·북한·중국 등과의 유사시에 대비해 에이태큼스 미사일을 일부 비축해 두고 있는데, 대우크라이나 지원분만큼 채워 넣을 대체재로 쓸 정밀타격 미사일이 납품되기 시작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에이태큼스 지원에 나설 수 있다고 NYT는 전망했다.
이번 예산안에 따른 지원은 최근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상당한 힘이 될 것으로 미국 매체들은 보고 있다.
작년 1월 야당인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된 후로는 미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지원안이 상·하원을 통과해 법제화된 적이 없었다.
미국은 기통과된 예산과 대통령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지원으로 대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이어갔지만, 올해 들어서는 의회의 추가 예산 승인 없이는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최근 미국의 무기 지원량은 상당 정도로 줄어들었고, 우크라이나는 전선에서 포탄을 원하는 만큼 충분히 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8일 한 공개행사에서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우크라이나가 올해 말 패할 수 있다는 정보 판단을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미국이 제공할 포탄, 대공 방어 장비 등은 '게임체인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크라이나가 저항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는 데는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법안에는 608억 달러 지원액 중 10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 지원액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에 상환을 요구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면 대출 형식으로 하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미국 매체들은 전했다. 다만 2026년부터 미국 대통령이 탕감해 줄 수 있도록 법안은 규정했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 속에 처리 전망이 불투명했던 대우크라이나 지원안이 하원을 통과한 데는 하원 공화당 1인자인 마이크 존슨 의장의 입장 변화가 결정적이었다.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에 대한 지원액을 한데 묶은 패키지 법안이 지난 2월 상원을 통과한 뒤 하원으로 넘어왔지만, 존슨 하원의장은 동료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13일 이란의 대이스라엘 공습으로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시급성이 생기자 그는 이스라엘 지원법안만 처리하려던 그간의 기조를 접고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에 대한 지원안을 각각 따로 표결에 부치는 새로운 접근법을 택했다.
강한 친이스라엘 성향인 존슨 의장이 이란과 무력 공방을 벌인 이스라엘을 신속히 지원해야 할 필요에 따라 민주당과 공통분모를 만들기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안도 함께 추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의장 신분으로 정보 당국의 우크라이나 상황 브리핑을 지속해 받으며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NYT에 따르면 존슨 의장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미국 청년들을 보내는 것보다 미국 총알을 보내는 것이 낫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법안 표결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우리는 여기서 우리 일을 했고, 나는 역사가 그것을 잘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260억 달러(약 36조원) 규모의 대이스라엘 지원 법안은 찬성 366표-반대 58표로 가결됐지만 여당인 민주당 의원 중 37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내 진보 성향 의원들은 6개월을 넘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 가자지구에서 3만명 이상이 숨진 상황에서 미국이 용처 제한 없는 '무조건적 지원'을 계속하는 데 대해 이견을 표명한 것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결국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바이든 행정부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지지층 내 반감이 이번 표결에서도 일부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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